이언형(李彦衡)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5B8D615B1710X0 |
자(字) | 평숙(平叔) |
생년 | 1710(숙종 36)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언형(李彦衡)
1710년(숙종 36)∼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평숙(平叔)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증조부는 영양군(嶺陽君) 이현(李儇)이고, 조부는 동원군(東原君) 이집(李潗)이다. 부친 청릉군(靑陵君) 이모(李模)와 모친 조정의(趙正誼)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부는 예조판서 홍현보(洪鉉輔)이다.
1755년(영조 31) 정시문과 을과로 급제하였다. 1756년(영조 32) 정언이 되어 북관(北關)에 부임한 뒤 추문을 일으킨 대사성 김한철(金漢喆)의 개정(改正)과 재변(災變)을 아뢰지 않은 삼사 대신들을 체직 할 것을 상소하였다가 폐서인(廢庶人)에 처해졌다. 그러나 영의정(領議政) 이천보(李天輔)의 도움으로 풀려난 뒤 수찬을 거쳐 승지‧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슬하에 아들 이택수(李澤遂)가 있다.
증조부는 영양군(嶺陽君) 이현(李儇)이고, 조부는 동원군(東原君) 이집(李潗)이다. 부친 청릉군(靑陵君) 이모(李模)와 모친 조정의(趙正誼)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부는 예조판서 홍현보(洪鉉輔)이다.
1755년(영조 31) 정시문과 을과로 급제하였다. 1756년(영조 32) 정언이 되어 북관(北關)에 부임한 뒤 추문을 일으킨 대사성 김한철(金漢喆)의 개정(改正)과 재변(災變)을 아뢰지 않은 삼사 대신들을 체직 할 것을 상소하였다가 폐서인(廢庶人)에 처해졌다. 그러나 영의정(領議政) 이천보(李天輔)의 도움으로 풀려난 뒤 수찬을 거쳐 승지‧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슬하에 아들 이택수(李澤遂)가 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김성욱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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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