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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흘(泰屹)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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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무등(無等)
호(號)천봉(天峰)
생년1710(숙종 36)
졸년1793(정조 17)
시대조선후기
활동분야종교 > 불교인
김두필(金斗弼)
조씨(趙氏)
출신지황해도 서흥

[상세내용]

태흘(泰屹)
1710년(숙종 36)∼1793년(정조 17). 조선 중기의 승려. 성은 김씨. 자는 무등(無等), 호는 천봉(天峰). 황해도 서흥 출신. 부친은 김두필(金斗弼)이며, 모친은 조씨(趙氏)이다.

16세에 유덕사(有德寺)로 출가하여 명탁(明琢)의 제자가 되었고, 도원(道圓)으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20세에 우첨(雨霑)에게 불경을 배운 뒤, 여러 선지식을 찾아 공부하였다. 뒤에 배천호국사(護國寺)에 돌아가 참선, 정진하였으며, 해숙(海淑)의 법을 받았다.

입적하기 직전 어떤 승려가 묻기를 “스님이 항상 고공무상(苦空無常)을 말씀하시는 데 또한 생사에 끄달리면 좌탈(坐脫)을 하지 못하겠습니다.”하였다.

태흘이 말하기를 “앉는 것이 반드시 앉는 것 아니며, 눕는 것 또한 반드시 눕는 것 아니로다.”하였다.

다시 묻기를 “스님이 이제 입멸(入滅)을 보이는 데 어찌 멸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 하십니까?”하자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적하였다.

안색은 평상시 입정(入定)할 때와 같았으며, 다비한 뒤 정골 2편과 사리 64매가 출현하였다.

제자들이 배천 호국사문화 월정사(月精寺), 양주 망월사(望月寺)에 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하였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환열(幻悅)묘일(妙一)낭규(朗奎) 등 10여명이 있으며, 계율을 받은 승려는 수백명에 이른다.

[참고문헌]

朝鮮佛敎通史(李能和, 新文館, 1918)

[집필자]

장충식(張忠植)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