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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규(鄭漢奎)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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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응오(應五)
생년1709(숙종 35)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영일(迎日)
활동분야문신
정광제(鄭匡濟)

[상세내용]

정한규(鄭漢奎)
1709년(숙종 35)~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응오(應五)이다. 본관은 영일(迎日)이고, 출신지는 한양(漢陽: 현 서울)이다.

증조부는 정지하(鄭之河)이고, 조부는 정상길(鄭相吉)이며, 부친은 정광제(鄭匡濟)이다. 동생은 정한두(鄭漢斗)이다.

1735년(영조 11) 증광시에 생원 3등 26위로 입격하였고, 1740년(영조 16) 증광시 문과에서 병과 8위로 급제하였다.

1741년(영조 17) 1월에 가주서(假注書)에 임명되었고, 1742년(영조 18) 3월에 자여찰방(自如察訪)이 되었다. 1744년(영조 20) 12월에는 예조좌랑(禮曹佐郞)으로 임명되었고, 1745년(영조 21) 1월에 병조정랑(兵曹正郞)으로 자리하였다. 이후에는 주로 삼사(三司)의 관직에 임명되었다.

1745년(영조 21) 2월에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으로 재직 중, 태천현감(泰川縣監) 윤붕거(尹鵬擧)와 고부군수(古阜郡守) 유휘철(柳彙喆) 등이 자행한 실정(失政)을 보고하며 파직을 청하였다. 이에 따라 윤붕거와 유휘철을 심문하라는 명이 내려졌다. 같은 해 5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이 되었다. 이후 1749년(영조 25) 12월에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1753년(영조 29) 1월에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1755년(영조 31) 6월에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에 임명되었다. 한편, 1756년(영조 32) 5월에 옥구현령(沃溝縣令)과 1757년(영조 33) 4월에 강계부사(江界府使)에 임명되는 등 지방 수령직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집필자]

노인환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