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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보양(趙普陽)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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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인경(仁卿)
자(字)현경(見卿)
호(號)팔우헌(八友軒)
생년1709(숙종 35)
졸년1788(정조 12)
시대조선후기
본관한양(漢陽)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조보양(趙普陽)
1709년(숙종 35)∼1788년(정조 12). 조선 중기 문신‧유학자. 자는 인경(仁卿)‧현경(見卿)이고, 호는 팔우헌(八友軒)이다.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거주지는 경상북도 안동(安東)이다.

증조부는 조명한(趙鳴漢)이고, 조부는 조봉징(趙鳳徵)이며, 부친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조원익(趙元益)이다. 외조부는 예안(禮安) 이기만(李基晩)이며, 형제로 조규양(趙葵陽)‧조득양(趙得陽)‧조의양(趙宜陽)‧조몽양(趙夢陽)이 있다.

1747년(영조 23) 식년시 진사 3등 43위로 합격하였으며, 1773년(영조 49) 증광시 병과 15위로 급제하였다.

소은(小隱) 이경익(李景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과 나졸재(懶拙齋) 이산두(李山斗)는 직접 만나서 학문에 대한 질정을 받았다.

1747년(영조 23)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이 되고 예조좌랑(禮曺佐郞)이 되었으나, 예조참판 정후겸(鄭厚謙)이 참알(參謁)할 때 나와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을 매질하자 벼슬을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1781년(정조 5) 3월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에 제수되었고, 4월에 병조좌랑(兵曹佐郞)에 부임하자마자 바로 다시 돌아왔으며, 1788년(정조 12) 수직으로 통정대부에 가자되고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겸 오위장(五衛將)을 제수받았다.

문집으로 『팔우헌문집(八友軒文集)』 7권 4책이 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八友軒文集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1-12-15"정후겸이 부임할때 조보양이 정후겸을 맞이하지 않아서 정후겸의 종에게 매를 맞고 그것에 분개하여 벼슬을 그만두었다"를 "정후겸(鄭厚謙)이 참알(參謁)할 때 나와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을 매질하자 벼슬을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왔다"로 수정함.
2011-12-15"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자마자 바로 다시 돌아왔으며"를 "3월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에 제수되었고, 4월에 병조좌랑(兵曹佐郞)에 부임하자마자 바로 다시 돌아왔으며"로 수정함.
2011-12-15"오위장(五衛將)을 제수받았으나 나이가 많아 부임하지 못하였다"를 "수직으로 통정대부에 가자되고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겸 오위장(五衛將)을 제수받았다"로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