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위(金㙔)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AE40C704FFFFB1709X0 |
자(字) | 호경(虎卿) |
호(號) | 갈수헌(渴睡軒) |
생년 | 1709(숙종 35) |
졸년 | 1788(정조 12)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예안(禮安)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원열(金元烈) |
모 | 전주유씨(全州柳氏) |
외조부 | 유창시(柳昌時) |
저서 | 『갈수헌문집』 |
[상세내용]
김위(金㙔)
1709년(숙종 35)∼1788년(정조 12).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공준(公準)‧호경(虎卿), 호는 갈수헌(渴睡軒).
부친은 김원열(金元烈)이며, 모친은 전주유씨(全州柳氏)로 진사 유창시(柳昌時)의 딸이다.
1750년(영조 26) 문과에 급제, 1756년 강화도장령전별검이 되었고, 1759년 성균관전적과 예조좌랑을 지낸 뒤 1763년 이조좌랑을 거쳐 지평이 되었다.
1788년 80세에 승자,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이 되었다. 벼슬에 있는 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었으며, 덕망과 인품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저서로는 『갈수헌문집』 4권 2책이 있다.
부친은 김원열(金元烈)이며, 모친은 전주유씨(全州柳氏)로 진사 유창시(柳昌時)의 딸이다.
1750년(영조 26) 문과에 급제, 1756년 강화도장령전별검이 되었고, 1759년 성균관전적과 예조좌랑을 지낸 뒤 1763년 이조좌랑을 거쳐 지평이 되었다.
1788년 80세에 승자,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이 되었다. 벼슬에 있는 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었으며, 덕망과 인품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저서로는 『갈수헌문집』 4권 2책이 있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집필자]
이원구(李元九)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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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