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준형(南峻衡)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0A8C900D615B1703X0 |
자(字) | 진숙(鎭叔) |
호(號) | 괴정(槐亭) |
생년 | 1703(숙종 29) |
졸년 | 1778(정조 2)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영양(英陽)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상세내용]
남준형(南峻衡)
1703년(숙종 29)∼1778년(정조 2). 조선 중기 학자. 자는 진숙(鎭叔)이고, 호는 괴정(槐亭)이다. 본관은 영양(英陽)이고, 거주지는 경상북도 영덕군(榮德郡) 영해면(寧海面)이다.
부친은 남명흠(南命欽)이고, 생부는 남여흠(南汝欽)이다. 형 남기형(南紀衡)이 있다.
1753년(영조 29) 식년 생원시에 2등 1위로 합격하였다.
어려서 부친을 잃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며 지냈다. 생원시에 합격한 후에도 벼슬에는 뜻이 없어 오로지 경전(經典)과 역사공부로 즐거움을 삼으면서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또 마을노인들을 위한 양노회(養老會)를 만들어 노인들의 편안함을 도모하였으며, 아전들이 부(府)와 상혜청(常惠聽) 등의 재물을 함부로 낭비하자 마을 노인들과 함께 이를 바로잡아 마을 주민들의 세(稅)를 감면토록 하는 등 민생에도 힘써 칭송을 들었다.
현재 영해면 괴시(槐市)마을에는 남준형(南峻衡)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스므나골재사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0호로, 정자 괴정(槐亭)은 제397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고 『괴정유고(槐亭遺稿)』가 영양남씨(英陽南氏) 12명의 유고집인 『괴장세고(槐庄世稿)』에 남붕익(南鵬翼)‧남명흠(南命欽)‧남기형(南紀衡)‧남택만(南澤萬)‧남극만(南極萬)‧남일운(南一運)‧남상운(南相運)‧남경악(南景岳)‧남화수(南華壽)‧남기수(南箕壽)‧남곤수(南崑壽) 등의 유고와 함께 실려 있다.
부친은 남명흠(南命欽)이고, 생부는 남여흠(南汝欽)이다. 형 남기형(南紀衡)이 있다.
1753년(영조 29) 식년 생원시에 2등 1위로 합격하였다.
어려서 부친을 잃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며 지냈다. 생원시에 합격한 후에도 벼슬에는 뜻이 없어 오로지 경전(經典)과 역사공부로 즐거움을 삼으면서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또 마을노인들을 위한 양노회(養老會)를 만들어 노인들의 편안함을 도모하였으며, 아전들이 부(府)와 상혜청(常惠聽) 등의 재물을 함부로 낭비하자 마을 노인들과 함께 이를 바로잡아 마을 주민들의 세(稅)를 감면토록 하는 등 민생에도 힘써 칭송을 들었다.
현재 영해면 괴시(槐市)마을에는 남준형(南峻衡)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스므나골재사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0호로, 정자 괴정(槐亭)은 제397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고 『괴정유고(槐亭遺稿)』가 영양남씨(英陽南氏) 12명의 유고집인 『괴장세고(槐庄世稿)』에 남붕익(南鵬翼)‧남명흠(南命欽)‧남기형(南紀衡)‧남택만(南澤萬)‧남극만(南極萬)‧남일운(南一運)‧남상운(南相運)‧남경악(南景岳)‧남화수(南華壽)‧남기수(南箕壽)‧남곤수(南崑壽) 등의 유고와 함께 실려 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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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