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서명신(徐命臣)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11CBA85C2E0B1701X0
자(字)원직(元直)
호(號)원와(袁窩)
생년1701(숙종 27)
졸년1771(영조 47)
시대조선후기
본관대구(大丘)
활동분야문신
서종수(徐宗秀)

[상세내용]

서명신(徐命臣)
1701년(숙종 27)∼1771년(영조 47).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원직(元直)이고, 호는 원와(袁窩)이다. 본관은 대구(大丘)이다.

증조부는 서진리(徐晉履)이고, 조부는 서문환(徐文渙)이다. 부친 증 이조판서(贈吏曹判書) 서종수(徐宗秀)와 모친 유명량(兪命亮)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박필겸(朴弼謙)의 딸이다.

1726년(영조 2) 식년시에서 진사에 합격하였고 1732년(영조 8) 성균관 유생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황감제(黃柑製)에서 수석을 차지하였다. 1733년(영조 9) 식년시에서 을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공조참의(工曹參議)‧대사간(大司諫)‧대사성(大司成)‧승지(承旨)‧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이조참의(吏曹參議)‧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한성판윤(漢城判尹)‧형조판서(刑曹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당시 이상지(李商芝)가 박희원(朴喜源)의 장례 때 묘소의 위치가 자신이 세운 정자와 가깝다는 이유로 장례를 훼방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서명신(徐命臣)은 이상지를 두둔하여 송사를 처리하였다. 그러나 1767년(영조 43)에 송사처리가 공평하지 못했다는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으며, 이후 남해(南海)로 유배되기도 하였다.

노년에 그 공적을 인정받아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참고문헌]

CD-ROM 사마방목(司馬榜目)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조선왕조실록(영조)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