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겸(尹在謙)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4C7ACACB8B1701X0 |
자(字) | 사익(士益) |
생년 | 1701(숙종 27)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파평(坡平)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윤재겸(尹在謙)
1701년(숙종 27)∼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사익(士益)이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조부는 윤동명(尹東鳴)이고, 부친은 정언 윤혼(尹焜)이다. 부인은 최익수(崔益秀)의 딸 경주최씨(慶州崔氏)이다.
1750년(영조 26) 온양에서 거행된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56년(영조 32) 장령 등을 지내면서 사도세자에게 학문에 정진할 것과 정사에 근면할 것, 또한 시강원 관원들의 기강을 확립할 것 등의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이 상소는 사후로 추정되는 1792년(정조 16)에 사도세자와 관련된 문제로 다시 불거져 세자를 비난하였다는 이유로 사후에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슬하에 아들 윤경조(尹景祖)가 있다.
조부는 윤동명(尹東鳴)이고, 부친은 정언 윤혼(尹焜)이다. 부인은 최익수(崔益秀)의 딸 경주최씨(慶州崔氏)이다.
1750년(영조 26) 온양에서 거행된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56년(영조 32) 장령 등을 지내면서 사도세자에게 학문에 정진할 것과 정사에 근면할 것, 또한 시강원 관원들의 기강을 확립할 것 등의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이 상소는 사후로 추정되는 1792년(정조 16)에 사도세자와 관련된 문제로 다시 불거져 세자를 비난하였다는 이유로 사후에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슬하에 아들 윤경조(尹景祖)가 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榜目
正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김성욱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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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