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덕(崔致德)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D5CCE58B355B1699X0 |
자(字) | 성능(聖能) |
호(號) | 희옹(喜翁) |
생년 | 1699(숙종 25) |
졸년 | 1770(영조 46)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경주(慶州)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부 | 최두만(崔斗萬) |
저서 | 『자희옹집(自喜翁集)』 |
[상세내용]
최치덕(崔致德)
1699년(숙종 25)∼1770년(영조 46).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능(聖能), 호는 희옹(喜翁).
부친은 최두만(崔斗萬)이다.
일찍이 손덕승(孫德升)을 사사하여 학문에 대성하였으나 과거를 보지 않고, 정성스럽게 노친을 봉양하였다. 친상을 당하여 삼년상을 마친 후에 묘 곁에 아침저녁으로 성묘하여 효자로 칭송받았다. 또 그에게 배움을 청하는 제자가 날로 늘어 ‘모고암(慕古巖)’과 ‘일성실(日省室)’, ‘종오정(從吾亭)’을 지어 여러 학생들과 학문을 강론하여 후진 교육에 매진하였다.
저서로 『자희옹집(自喜翁集)』 남아 있다. 이 책은 1938년 6세손 최찬해(崔贊海)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저서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은 「역대사기(歷代史記)」로서 중국의 상고 시대로부터 원(元)‧명(明)에 이르기까지와 우리나라 단군조선으로부터 고구려‧백제‧신라‧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잘 정리하여 표현한 역작이다. 그리고 「도통인(道統引)」은 도통의 연원을 시로 나타낸 것이다. 잡저(雜著)에는 그가 학생들을 교육함에 필요한 규칙을 정한 「학규(學規)」가 실려 있다. 1773년(영조 49)에 학행으로 천거되어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었다.
부친은 최두만(崔斗萬)이다.
일찍이 손덕승(孫德升)을 사사하여 학문에 대성하였으나 과거를 보지 않고, 정성스럽게 노친을 봉양하였다. 친상을 당하여 삼년상을 마친 후에 묘 곁에 아침저녁으로 성묘하여 효자로 칭송받았다. 또 그에게 배움을 청하는 제자가 날로 늘어 ‘모고암(慕古巖)’과 ‘일성실(日省室)’, ‘종오정(從吾亭)’을 지어 여러 학생들과 학문을 강론하여 후진 교육에 매진하였다.
저서로 『자희옹집(自喜翁集)』 남아 있다. 이 책은 1938년 6세손 최찬해(崔贊海)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저서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은 「역대사기(歷代史記)」로서 중국의 상고 시대로부터 원(元)‧명(明)에 이르기까지와 우리나라 단군조선으로부터 고구려‧백제‧신라‧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잘 정리하여 표현한 역작이다. 그리고 「도통인(道統引)」은 도통의 연원을 시로 나타낸 것이다. 잡저(雜著)에는 그가 학생들을 교육함에 필요한 규칙을 정한 「학규(學規)」가 실려 있다. 1773년(영조 49)에 학행으로 천거되어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自喜翁集
慶州邑誌
慶州邑誌
[집필자]
김영진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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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