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정(李益炡)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775C815B1699X0 |
자(字) | 명숙(明叔) |
시호(諡號) | 정간(靖簡) |
생년 | 1699(숙종 25) |
졸년 | 1782(정조 6)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직(李樴) |
고조부 | 이공(李珙)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익정(李益炡)
1699년(숙종 25)∼1782년(정조 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명숙(明叔).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의 현손이며, 밀창군(密昌君) 이직(李樴)의 아들이고, 영조 때 공조판서를 지낸 이성규(李聖圭)의 아버지이다.
1723년(경종 3) 진사가 되고, 호조정랑을 지낸 뒤 1736년(영조 1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이 된 후 집의(執義)‧승지‧예조참판 등을 거쳐 1740년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이듬해 병조참판에 이어 1743년 한해에 한성우윤‧강화유수‧대사헌‧대사간을 역임하고, 1744년 이조참판으로 재직중 동지사 겸 사은사(冬至使兼謝恩使)의 부사가 되어 청나라에 가게 되었다.
사행중 국위를 손상시켰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으나 곧 복관되어 1746년 다시 병조참판으로 기용되었으며, 이후 대사간‧대사헌‧우참찬을 거쳐 1754년 예조판서에 올랐다.
그뒤 우빈객‧판의금부사‧공조판서‧지돈녕부사‧판돈녕부사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시호는 정간(靖簡)이다.
1723년(경종 3) 진사가 되고, 호조정랑을 지낸 뒤 1736년(영조 1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이 된 후 집의(執義)‧승지‧예조참판 등을 거쳐 1740년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이듬해 병조참판에 이어 1743년 한해에 한성우윤‧강화유수‧대사헌‧대사간을 역임하고, 1744년 이조참판으로 재직중 동지사 겸 사은사(冬至使兼謝恩使)의 부사가 되어 청나라에 가게 되었다.
사행중 국위를 손상시켰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으나 곧 복관되어 1746년 다시 병조참판으로 기용되었으며, 이후 대사간‧대사헌‧우참찬을 거쳐 1754년 예조판서에 올랐다.
그뒤 우빈객‧판의금부사‧공조판서‧지돈녕부사‧판돈녕부사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시호는 정간(靖簡)이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榜目
正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조정기(趙楨基)
명 : "익정(益炡)"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