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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유의(沈游義)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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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의보(宜甫)
생년1696(숙종 22)
졸년1730(영조 6)
시대조선중기
본관청송(靑松)
활동분야유생
심수간(沈壽幹)
생부심수근(沈壽根)

[상세내용]

심유의(沈游義)
1696년(숙종 22)~1730년(영조 6). 조선 중기 유생. 자는 의보(宜甫)이다.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증조부는 심서견(沈瑞肩)이고, 조부는 심득원(沈得元)이다. 부친은 심수간(沈壽幹)이고, 모친은 이한명(李漢命)의 딸이다. 생부는 심수근(沈壽根)이다. 부인은 정행오(鄭行五)의 딸이다.

1723년(경종 3) 증광시에서 갑과 2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소론 계열에서 흉계를 꾸며서 궁녀로 하여금 흉물을 궁중으로 들여보낸 사건이 있었다. 이는 당시 동궁(東宮)의 신분이었던 영조를 모해하려던 계획이었는데, 1730년(영조 6)이 되어서야 이러한 사실이 뒤늦게 발각되었다. 이후 관련자 모두가 처벌될 때 관련자로 지목되어 국문(鞠問)을 당하였다. 그러나 형신(刑訊)을 받던 중 사망하였다.

이후 1735년(영조 11)에 박문수(朴文秀)가 심유의(沈游義)가 당시 사건과는 무관하였다는 사실을 호소하면서 원통함을 씻어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 결과 임금이 그 사건을 재차 조사할 것을 명령하였고, 1736년(영조 12)이 되어서야 그의 억울함이 밝혀져 신원이 회복되었으며, 관직이 복원되었다. 그러나 정언(正言) 민택수(閔宅洙) 등은 그가 죄인임을 강조하여 임금이 내린 복관의 명령을 철회할 것을 건의하였다.

[참고문헌]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