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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백(朴師伯)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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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성로(聖老)
생년1696(숙종 22)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반남(潘南)
활동분야유생
박필순(朴弼純)

[상세내용]

박사백(朴師伯)
1696년(숙종 22)~미상. 조선 중기 유생. 자는 성로(聖老)이다.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 현 서울)이다.

부친은 행통훈대부(行通訓大夫) 홍주진관병마절제도위(洪州鎭管兵馬節制都尉) 박필순(朴弼純)이고, 형으로 박사임(朴師任)이 있다.

1729년(영조 5) 식년시에서 생원 1등 1위로 합격한 후, 음직(蔭職)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1737년(영조 13) 중시(重試)에 응시한 음관(蔭官) 중에서 명망이 있다는 이유로 임시로 가주서(假注書)에 제수되었고, 이후 평양서윤(平壤庶尹)‧군자감정(軍資監正) 등을 역임하였다.

1752년(영조 28)에 왕실의 상례(喪禮)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 영조가 내린 교명(敎命)을 모아서 편찬한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간행할 때 분익위(分翊衛)로 참여한 공을 인정받아 물품을 하사받았다. 1753년(영조 29)에 평양서윤으로 재직 중, 앓고 있던 병을 치료하느라 업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여 살인자 오씨(吳氏)에 대한 판결을 아래 관리에게 맡긴 일이 사간(司諫) 심익성(沈益聖)에 의해 조정에 알려져 파직에 처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평소 청렴함으로 일컬어졌고, 병을 치료하느라 어쩔 수 없이 아래 관리에게 업무를 맡긴 사람에 대해 파직을 청하는 상소를 올린 심익성을 파직해야 한다는 우의정(右議政) 김상로(金尙魯)의 청에 의해 도리어 심익성이 파직되었다. 1765년(영조 41)에 숭전전(崇政殿) 월대(月臺)에서 임금이 하향대제(夏享大祭)에 참석하였을 때, 70세의 나이에 봉조관(奉俎官)으로서 참여하였는데 너무 늙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었다. 사후 1796년(정조 20)에 그동안 누락되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던 청백리를 추가로 추천할 때, 형조판서(刑曹判書) 이조원(李祖源)의 추천을 받았으나, 의정부(議政府)의 추천을 받지 못하여 청백리에 들지는 못하였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英祖實錄
正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