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검(鄭履儉)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15C774AC80B1695X0 |
자(字) | 원례(元禮) |
생년 | 1695(숙종 21) |
졸년 | 1754(영조 30)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동래(東萊)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관련정보]
[상세내용]
정이검(鄭履儉)
1695년(숙종 21)∼1754년(영조 30).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원례(元禮)이다.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증조부는 정재해(鄭載海)이고, 조부는 정시선(鄭是先)이다. 부친 정석년(鄭錫年)과 모친 이세태(李世泰)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30년(영조 6)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사관을 시작으로 정언‧지평‧부수찬‧교리 등을 지냈다. 수찬 재직 시절에는 성학진력‧언로확충‧풍속돈화‧인재수용‧재용절감‧변방방어를 상소하였고, 검토관 재직 시절에는 천재지변 해결을 위한 국왕의 성찰과 북방의 흉년 상황 및 인재 수용 등을 상소하였다. 1742년(영조 18) 동래부사로 나갔다가 돌아와 호조참의로 승진하였으나 수령 재직 중에 영문(營門)의 체통을 손상시킨 사실이 드러나 파직되었다.
증조부는 정재해(鄭載海)이고, 조부는 정시선(鄭是先)이다. 부친 정석년(鄭錫年)과 모친 이세태(李世泰)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30년(영조 6)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사관을 시작으로 정언‧지평‧부수찬‧교리 등을 지냈다. 수찬 재직 시절에는 성학진력‧언로확충‧풍속돈화‧인재수용‧재용절감‧변방방어를 상소하였고, 검토관 재직 시절에는 천재지변 해결을 위한 국왕의 성찰과 북방의 흉년 상황 및 인재 수용 등을 상소하였다. 1742년(영조 18) 동래부사로 나갔다가 돌아와 호조참의로 승진하였으나 수령 재직 중에 영문(營門)의 체통을 손상시킨 사실이 드러나 파직되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김성욱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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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