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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원(申鎭元)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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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미중(美仲)
호(號)소와(素窩)
생년1694(숙종 20)
졸년1763(영조 39)
시대조선중기
본관평산(平山)
활동분야학생 > 유생

[상세내용]

신진원(申鎭元)
1694년(숙종 20) 12월 15일∼1763년(영조 39) 1월 14일. 조선 중기 유생. 자는 미중(美仲)이고, 호는 소와(素窩)이다.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함창군(咸昌郡: 현 상주군(尙州郡) 함창읍)이다.

증조부는 신석무(申碩茂)이고, 조부는 신식(申烒)이다. 부친 통덕랑(通德郞) 신명하(申命夏)와 모친 사인(士人) 박침(朴琛)의 딸 태안박씨(泰安朴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사인(士人) 이세준(李世㻐)의 딸 광주이씨(廣州李氏)이고, 둘째 부인은 통덕랑(通德郞) 김진모(金震模)의 딸 영동김씨(永同金氏)이다.

7세에 부친을 여의었는데 상례(喪禮)를 치루는 모습이 어른 같았고, 모친을 극진한 효성으로 봉양하였고, 형제들과는 한 집에서 살만큼 우애가 깊었다.

1725년(영조 1) 증광시 진사 2등 12위로 합격하였으나 중년 이후에 과거시험에 대한 뜻을 끊고 두문불출하며 조용히 수양하면서 발이 관부(官府)에 미치지 않게 하였으며, 서울에서 노닐더라도 권문세가(權門勢家)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만년에 유허지(遺墟地)의 작은 건물을 중건하여 옛 편액과 옛 시(詩)를 걸어두고 서실(西室)을 ‘선양(善養)’이라 이름하였다. 또 화초를 심어두고 족제(族弟) 호와(好窩) 신진경(申鎭經)‧간재(艮齋) 채징휴(蔡徵休)‧상우(上愚) 조수구(趙守球) 등과 함께 아침저녁으로 유유자적하며 즐겁게 지내자 사람들이 칭찬하며 부러워하였다.

향년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1남 4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신광후(申光厚)이다.

묘는 경상북도 함창군에 있다.

[참고문헌]

櫟泉集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