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任珽)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784C815FFFFB1694X0 |
자(字) | 성방(聖方) |
호(號) | 호재(扈齋) |
생년 | 1694(숙종 20) |
졸년 | 1750(영조 26)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풍천(豊川)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임수적(任守迪) |
저서 | 『호재집』 |
[관련정보]
[상세내용]
임정(任珽)
1694년(숙종 20)∼1750년(영조 2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성방(聖方), 호는 호재(扈齋).
형조참판 임수적(任守迪)의 아들이다.
숙종 때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722년(경종 2) 황감시(黃柑試)에서 일등하여 전시에 직부(直赴)되고, 이듬해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문한관을 역임하다가 1728년(영조 4) 지평에 올랐다.
다음해 도당록(都堂錄)에 올랐고, 그뒤 수찬‧부수찬‧정언‧교리‧부교리 등을 번갈아 역임하였다.
1731년 수찬으로 탕평책에 따른 시정의 폐단을 건의하여 왕의 칭찬을 받았다.
1735년 사간이 되었고, 다음해에 응교로서 중시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곧 승지가 되고, 1740년 대사간에 올랐다.
그뒤 대사간‧승지‧이조참의를 거듭 역임하다가 1748년 곡산도호부사가 되어 외직에 나갔고 2년 후에 대사성이 되었다.
고금의 시가에 능했으며 글씨도 뛰어났다고 한다.
저서는 『호재집』, 글씨는 해주축성비(海州築城碑), 개성의 계성사비(啓聖祠碑) 등이 남아 있다.
형조참판 임수적(任守迪)의 아들이다.
숙종 때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722년(경종 2) 황감시(黃柑試)에서 일등하여 전시에 직부(直赴)되고, 이듬해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문한관을 역임하다가 1728년(영조 4) 지평에 올랐다.
다음해 도당록(都堂錄)에 올랐고, 그뒤 수찬‧부수찬‧정언‧교리‧부교리 등을 번갈아 역임하였다.
1731년 수찬으로 탕평책에 따른 시정의 폐단을 건의하여 왕의 칭찬을 받았다.
1735년 사간이 되었고, 다음해에 응교로서 중시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곧 승지가 되고, 1740년 대사간에 올랐다.
그뒤 대사간‧승지‧이조참의를 거듭 역임하다가 1748년 곡산도호부사가 되어 외직에 나갔고 2년 후에 대사성이 되었다.
고금의 시가에 능했으며 글씨도 뛰어났다고 한다.
저서는 『호재집』, 글씨는 해주축성비(海州築城碑), 개성의 계성사비(啓聖祠碑) 등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左澗集
朝鮮金石總覽
國朝人物考
朝鮮名臣傳
英祖實錄
國朝榜目
左澗集
朝鮮金石總覽
國朝人物考
朝鮮名臣傳
[이미지]
[집필자]
장동익(張東翼)
대표명 | 임정(任珽) |
성명 | 임정(任珽) |
성명 : "임정(任珽)"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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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