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이태중(李台重)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774D0DCC911B1694X0
자(字)자삼(子三)
호(號)삼산(三山)
시호(諡號)문경(文敬)
생년1694(숙종 20)
졸년1756(영조 32)
시대조선중기
본관한산(韓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병철(李秉哲)
저서『삼산집』

[상세내용]

이태중(李台重)
1694년(숙종 20)∼1756년(영조 3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자삼(子三), 호는 삼산(三山).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참봉 이병철(李秉哲)의 아들이다.

이희조(李喜朝)의 문인으로 1717년(숙종 43)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730년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5년(영조 6)지평으로, 신임사화 때 화를 입은 노론 4대신의 신원(伸寃)을 주장하다가 분당을 일삼는다는 탄핵을 받아 흑산도에 위리안치되었고, 그 이듬해에 영암으로 이배되었다.

그뒤 양사‧세자시강원 등의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740년에 다시 지평이 되어 좌의정 유봉휘(柳鳳輝), 영의정 조태구(趙泰耉)의 관작을 추탈할 것과 당시 영의정 이광좌(李光佐)가 그의 아버지의 묘를 ‘王’자 산맥(山脈)에 쓰고 나서 지사(地師)에게 누설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죄를 들어 파직시킬 것을 주청하다가 도리어 갑산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대신들의 주청으로 풀려나와 부교리황해도관찰사평안도관찰사를 거쳐 예조참판부제학호조판서 겸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저서로는 『삼산집』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承政院日記
國朝榜目
楓皐集

[집필자]

유원동(劉元東)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