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한사선(韓師善)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D55CC0ACC120B1690X0
자(字)체원(體元)
생년1690(숙종 16)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청주(淸州)
활동분야문신
한배하(韓配夏)

[상세내용]

한사선(韓師善)
1690년(숙종 16)~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체원(體元)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거주지는 한양이다.

증조부는 한수원(韓壽遠)이고, 조부는 한성보(韓聖輔)이며, 부친은 통정대부(通政大夫) 전행병조참의(前行兵曹參議) 한배하(韓配夏)이다. 외조부는 이오(李悟)이고, 처부는 이익수(李益壽)이다. 형으로 한사맹(韓師孟)‧한사철(韓師喆)이 있다.

1713년(숙종 39) 증광시 생원 3등 5위로 합격하였으며, 1722년(경종 2) 알성시 문과에 병과 3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설서(說書)‧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남평현감(南平縣監)‧동부승지(同副承旨)‧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 등을 역임하였다.

1727년(영조 3) 설서로 재임하던 중, 부친 한배하가 진재해(秦再奚)를 윽박질러 목호룡(睦虎龍)의 화상을 그리게 했다는 말은 누명으로, 이는 부친이 교만한 민진후(閔鎭厚)의 잘못을 논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민진후의 형제인 민진원(閔鎭遠)이 보복하기 위해서 만든 말이라고 영조에게 하소연하였다. 1731년(영조 7) 남평현감 시절 평소 친분이 있던 호남어사(湖南御史) 황정(黃晸)에 의해 선정(善政)을 베푼다는 치계가 올라가서 한 자급(資級)이 올라갔다. 같은 해에 먼 곳으로 유배를 간 이병상(李秉常)을 두둔함과 동시에 여사대장(轝士大將) 구성임(具聖任)과 양주목사(楊州牧使) 홍덕망(洪德望)의 비리를 고발하며 죄를 물어야 할 것을 상소하였다가 윤허를 받지 못하자 사퇴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사퇴하지 말라는 명을 받았다. 또 같은 해에 종제(從弟) 한사억(韓師億)이 전부사(前府使) 한형(韓珩)을 모함한 일에 연루되어 삭탈관직 되고 문외송출 되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國朝文科榜目英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