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인(洪哲人)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64DCCA0C778B1687X0 |
자(字) | 명숙(明叔) |
생년 | 1687(숙종 13) |
졸년 | 1722(경종 2)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남양(南陽[唐]) |
활동분야 | 유생 |
부 | 홍언도(洪彦度) |
[상세내용]
홍철인(洪哲人)
1687년(숙종 13)∼1722년(경종 2). 조선 중기 유학자. 자는 명숙(明叔)이다. 본관은 남양(南陽[唐])이다.
부친 통덕랑(通德郞) 홍언도(洪彦度)의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은 홍의인(洪義人)이고, 동생은 홍득인(洪得人)이다.
1708년(숙종 34) 식년시에서 생원에 합격하였다.
1722년(경종 2)에 목호룡(睦虎龍)이 상소를 올려서, 병기와 독약으로써 임금을 시해하려는 역적 무리를 보고하였는데, 홍철인(洪哲人)도 김민택(金民澤)‧김성행(金省行)‧김용택(金龍澤)‧백망(白望)‧심상길(沈尙吉)‧오서종(吳瑞鍾)‧이기지(李器之)‧이희지(李喜之)‧장세상(張世相)‧정인중(鄭麟重)‧조흡(趙洽)‧홍의인 등과 함께 그 무리 속에 포함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국청(鞫廳)에 잡혀 들어갔다.
심문을 당하면서도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재차 심문을 받는 동안에도 혐의를 부인하였다. 별다른 단서를 거둘 수 없어서, 유배를 보내기로 결정되어 감옥에 가두었으나, 고문으로 인한 상처 때문에 36세의 젊은 나이에 옥중에서 숨을 거두었다.
1725년(영조 1)에 신임사화 때 죽임을 당한 자들이 무고하다는 사실을 밝혀져서, 신원이 회복되었으며, 지평(持平)에 추증되었다. 이후 이조참판(吏曹參判)에 가증(加贈)되었다.
부친 통덕랑(通德郞) 홍언도(洪彦度)의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은 홍의인(洪義人)이고, 동생은 홍득인(洪得人)이다.
1708년(숙종 34) 식년시에서 생원에 합격하였다.
1722년(경종 2)에 목호룡(睦虎龍)이 상소를 올려서, 병기와 독약으로써 임금을 시해하려는 역적 무리를 보고하였는데, 홍철인(洪哲人)도 김민택(金民澤)‧김성행(金省行)‧김용택(金龍澤)‧백망(白望)‧심상길(沈尙吉)‧오서종(吳瑞鍾)‧이기지(李器之)‧이희지(李喜之)‧장세상(張世相)‧정인중(鄭麟重)‧조흡(趙洽)‧홍의인 등과 함께 그 무리 속에 포함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국청(鞫廳)에 잡혀 들어갔다.
심문을 당하면서도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재차 심문을 받는 동안에도 혐의를 부인하였다. 별다른 단서를 거둘 수 없어서, 유배를 보내기로 결정되어 감옥에 가두었으나, 고문으로 인한 상처 때문에 36세의 젊은 나이에 옥중에서 숨을 거두었다.
1725년(영조 1)에 신임사화 때 죽임을 당한 자들이 무고하다는 사실을 밝혀져서, 신원이 회복되었으며, 지평(持平)에 추증되었다. 이후 이조참판(吏曹參判)에 가증(加贈)되었다.
[참고문헌]
CD-ROM 사마방목(司馬榜目)
조선왕조실록(경종, 영조)
조선왕조실록(경종, 영조)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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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