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신사관(申思觀)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2E0C0ACAD00B1687X0
자(字)국빈(國賓)
생년1687(숙종 13)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평산(平山)
활동분야문신
신현(申鋧)

[상세내용]

신사관(申思觀)
1687년(숙종 13)~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국빈(國賓)이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증조부는 신엽(申熀)이고, 조부는 신명중(申命重)이다. 부친 신현(申鋧)과 모친 이만경(李萬慶)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동생은 신사태(申思泰)‧신사진(申思晉)이다. 부인은 임세양(林世讓)의 딸이다.

1714년(숙종 40) 증광시에서 진사로 합격하였고, 1736년(영조 12) 정시에서 병과 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737년(영조 13)에는 김상적(金尙迪) 등과 함께 정언(正言)에 임명되었으며, 공조참의(工曹參議) 이흡(李潝)에 대하여, 교묘한 말로 언관(言官)들을 비난한다는 죄목으로 탄핵하기도 하였다. 1740년(영조 16)에는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서, 국가의 정책 방침을 갑작스럽게 고치지 말고, 간관(諫官)들의 간언에 대해서 과도한 처분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직언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장령(掌令) 이하술(李河述)로부터 상소의 내용이 음흉스럽고, 금령(禁令)을 핑계로 상대방을 견제하려는 목적뿐이라는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파직되었다. 1741년(영조 17)에는 사면이 되어, 임박(任璞) 등과 함께 정언에 재차 임명되었다. 이후 사간(司諫)‧장령‧지평(持平)‧집의(執義)‧필선(弼善)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國朝文科榜目
英祖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