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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교(曺命敎)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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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이보(彛甫)
호(號)담운(澹雲)
생년1687(숙종 13)
졸년1753(영조 29)
시대조선중기
본관창녕(昌寧)
활동분야문신 > 문신
조하기(曺夏奇)

[상세내용]

조명교(曺命敎)
1687년(숙종 13)∼1753년(영조 2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이보(彛甫), 호는 담운(澹雲). 판결사 조하기(曺夏奇)의 아들이다.

1717년(숙종 43) 사마시를 거쳐, 1719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1721년(경종 1) 검열에 재직중 신임사화로 파직당하였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정언에 등용되어 9개 조항의 시정(施政)을 상소하였으며, 이듬해 어사로 임명된 바 있고, 1727년 경종의 질병을 중외(中外)에 해명하도록 소를 올리고, 소론을 논척하는 데 앞장섰다.

1728년 이후 교리부수찬지평승지광주부사(廣州府使) 등을 역임하고, 1735년 대사성을 거쳐 이듬해 대사간이조참의를 지냈다.

1740년에는 소론인 조태억(趙泰億)의 손자 조영근(趙榮謹)의 문묘(文廟)배알을 막아 파직되었다.

그러나 다음해 다시 등용되어 정언부교리개성유수 등을 지내고, 1747년 대사헌에 올랐으며, 그해 동지부사(冬至副使)청나라에 다녀온 뒤 다시 대사헌호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749년 대사헌에서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서용되어 호조참판대사헌이조참판에 이어 1753년 예문관제학에 이르렀다.

덕행과 학문으로 선비의 추앙을 받았으며, 글씨에도 뛰어나 많은 비문을 남겼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능가사사적비(楞伽寺事蹟碑)‧영의정최규서표(領議政崔奎瑞表)‧예조판서김시환비(禮曹判書金始煥碑)‧판돈녕부사조광원비(判敦寧府事趙光遠碑)‧공조참판조문수비(工曹參判曺文秀碑) 등을 들 수 있다.

[참고문헌]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朝鮮金石總覽
槿域書畵徵

[집필자]

오갑균(吳甲均)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