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모(李顯謨)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D604BAA8B1685X0 |
자(字) | 문약(文若) |
생년 | 1685(숙종 11) |
졸년 | 1731(영조 7)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현모(李顯謨)
1685년(숙종 11)∼1731년(영조 7).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문약(文若)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증조부는 헌납(獻納) 이형(李逈)이고, 조부는 이영휘(李永輝)이다. 부친 대사헌(大司憲) 이제(李濟)와 모친 정식(鄭拭)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음직으로 관직에 진출하였으며, 1727년(영조 3)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부수찬에 제수되어, 국왕을 간하는 8조항 차자를 올려 신임을 얻었다. 그 후 부교리‧정언 등의 청요직을 역임하였다. 1731년(영조 7) 부응교로 재직하면서 직언을 성심으로 받아들일 것에 대한 상소로 영조의 미움을 받아, 지방 수령으로 용강(龍岡)에 보임되어 근무하던 중 병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사후에 승지 이광보(李匡輔)에 의해 청백리로 추천되었다.
아들로 이조판서 이성중(李成中)이 있다.
증조부는 헌납(獻納) 이형(李逈)이고, 조부는 이영휘(李永輝)이다. 부친 대사헌(大司憲) 이제(李濟)와 모친 정식(鄭拭)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음직으로 관직에 진출하였으며, 1727년(영조 3)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부수찬에 제수되어, 국왕을 간하는 8조항 차자를 올려 신임을 얻었다. 그 후 부교리‧정언 등의 청요직을 역임하였다. 1731년(영조 7) 부응교로 재직하면서 직언을 성심으로 받아들일 것에 대한 상소로 영조의 미움을 받아, 지방 수령으로 용강(龍岡)에 보임되어 근무하던 중 병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사후에 승지 이광보(李匡輔)에 의해 청백리로 추천되었다.
아들로 이조판서 이성중(李成中)이 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英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김성욱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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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