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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모(申重模)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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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사범(士範)
생년1683(숙종 9)
졸년1724(경종 4)
시대조선중기
본관아주(鵝洲)
활동분야학생 > 유생

[상세내용]

신중모(申重模)
1683년(숙종 9)∼1724년(경종 4). 조선 중기 유생. 자는 사범(士範)이다. 본관은 아주(鵝洲)이다.

부친은 신렴(申濂)이다. 부인은 정랑(正郞) 이후영(李後榮)의 딸 철성이씨(鐵城李氏)이다.

어려서부터 자질이 훌륭하여 행동거지가 남달랐다. 나부공(羅浮公)을 모시고 잠잘 때 자주 요강을 찾으면 자다가 놀라 일어나 가져다 드렸다.

일곱 살에 『십구사(十九史)』를 읽었으며 눈에 보이는 대로 바로 외웠다. 부친의 성품이 엄하여 아들이 하나임에도 조금의 여유를 주지 않았다. 열두세 살에 이미 경사(經史)와 제자백가(諸子百家)를 읽었다. 당시 현감 정상호(鄭相澔)가 연회에 초청하자 어린아이가 왕래할 곳이 아니라며 거절하였다.

1707년(숙종 33) 부친이 서울에 간 사이 모친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자 옷도 벗지 않고 탕약을 달여 병구완을 하였으나 부친이 돌아오고 얼마 되지 않아 모친상을 당하였다.

처남 이훤(李烜)은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의 손자로 교유가 두터웠는데, 1708년(숙종 34) 병으로 자신의 집에 와서 병 조리를 하자, 의원을 맞이하고 약을 달여 마음을 다하여 병구완을 하였으나 끝내 죽자 애통해하였다.

몇 번 향시에 응시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자 주변에서 뇌물을 쓸 것을 알려주었지만 거절하였다.

1718년(숙종 44) 부인의 병이 오래도록 낫지 않자 침식을 폐하고 목욕재계한 후 하늘에 자신이 대신 아플 것을 청하였으나 부인은 결국 죽고 말았다. 평소 손발 마비 증상이 있었는데 부인상을 당한 즈음에 더욱 심해져 마침내 고질병(痼疾病)이 되어 고칠 수가 없었다.

묘는 경상북도 선산(善山)에 있다.

[참고문헌]

訥隱集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