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태(金時泰)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2DCD0DCB1647X0 |
자(字) | 대래(大來) |
시호(諡號) | 충의(忠毅) |
생년 | 1682(숙종 8) |
졸년 | 1722(경종 2)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안동(安東[新]) |
활동분야 | 무신 |
부 | 김성구(金盛久) |
[상세내용]
김시태(金時泰)
1682년(숙종 8)~1722년(경종 2). 조선 중기 무신. 자는 대래(大來)이다. 본관은 안동(安東[新])이다.
김상준(金尙寯)의 후손으로, 부친 성균관생원(成均館生員) 김성구(金盛久)의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은 김시정(金時鼎)‧김시승(金時升)이다.
1714년(숙종 40) 증광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1721년(경종 1) 당시 황해병사(黃海兵使)로 재직 중이었으나, 사헌부(司憲府)에서는 김시태(金時泰)가 권흉(權凶)의 친속(親屬)이 되어, 백성들의 재산을 착취하여 권씨 가문에 바쳤다고 탄핵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철산부(鐵山府)로 유배되었다.
1722년(경종 2)에 사화에 연루되어, 백열이(白烈伊)‧이삼석(李三錫) 등과 함께 국청(鞫廳)에 불려가 심문을 받다가 사망하였다.
1725년(영조 1) 신임사화 때 연루되어 죽임을 당한 자들이 무고하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그의 관직이 복관되었다. 이후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추증되었으며, 시호 충의(忠毅)를 하사받았다.
김상준(金尙寯)의 후손으로, 부친 성균관생원(成均館生員) 김성구(金盛久)의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은 김시정(金時鼎)‧김시승(金時升)이다.
1714년(숙종 40) 증광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1721년(경종 1) 당시 황해병사(黃海兵使)로 재직 중이었으나, 사헌부(司憲府)에서는 김시태(金時泰)가 권흉(權凶)의 친속(親屬)이 되어, 백성들의 재산을 착취하여 권씨 가문에 바쳤다고 탄핵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철산부(鐵山府)로 유배되었다.
1722년(경종 2)에 사화에 연루되어, 백열이(白烈伊)‧이삼석(李三錫) 등과 함께 국청(鞫廳)에 불려가 심문을 받다가 사망하였다.
1725년(영조 1) 신임사화 때 연루되어 죽임을 당한 자들이 무고하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그의 관직이 복관되었다. 이후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추증되었으며, 시호 충의(忠毅)를 하사받았다.
[참고문헌]
甲午聖候平復稱慶增廣別試文武科殿試榜目
景宗實錄
景宗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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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