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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량(李顯良)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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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충보(忠甫)
생년1679(숙종 5)
졸년1737(영조 13)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이현량(李顯良)
1679년(숙종 5)∼1737년(영조 13) 12월 10일.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충보(忠甫)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출신지는 서울이다.

증조부는 이형(李逈)이고, 조부는 이영휘(李永輝)이다. 부친 이택(李澤)과 모친 김여남(金汝南)의 딸 광주김씨(光州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김당(金鏜)의 딸 안동김씨(安東金氏)이다.

1710년(숙종 36) 증광시 생원 3등 22위로 합격한 후, 1722년(경종 2) 후릉참봉(厚陵參奉)에 임용되어 평시봉사(平市奉事)에 올랐는데, 큰형과 함께 관직을 버리고 동강(東江)에서 살았다.

1727년(영조 3)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에 임용되어 내자직장(內資直長)에 올랐다가 다시 사옹원직장(司饔院直長) 등을 역임하였다.

1730년(영조 6) 정시 을과 3위로 문과 급제한 후 전적(典籍)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정언(正言)‧병조좌랑(兵曹佐郞)을 거쳐 다시 정언(正言)으로 임용되었는데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1735년(영조 11) 헌납(獻納)에 임용되었으나 자신의 사사로움을 이기는 것[克己私]‧염치를 권장하는 것[勵廉恥]‧인품을 깊이 살필 것[審人品]‧학규를 회복할 것[復學規]‧과법을 엄중히 할 것[嚴科法]‧백성을 구휼하는 데 힘쓸 것[恤民窮] 등 ‘6조진계(六條陳戒)’를 붙인 소(疏)를 올리고 사양하였다. 1736년(영조 12) 안음현감(安陰縣監)에 임용되었다.

향년 59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슬하에 4남을 두었는데, 이민중(李敏中)‧이치중(李致中)‧이철중(李徹中)‧이휘중(李徽中)이다.

묘는 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 낙동리에 있다.

[참고문헌]

西堂私載
司馬榜目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