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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한(朴師漢)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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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계량(季良)
생년1677(숙종 3)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고령(高靈)
활동분야문신
박선(朴銑)

[상세내용]

박사한(朴師漢)
1677년(숙종 3)~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계량(季良)이다. 본관은 고령(高靈)이고, 거주지는 한양이다.

조부는 대사헌(大司憲) 박장원(朴長遠)이고, 부친 통훈대부(通訓大夫) 전주진관병마동첨절제사(全州鎭管兵馬同僉節制使) 박선(朴銑)과 모친 이후산(李後山)의 딸 용인이씨(龍仁李氏) 사이에서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은 박태한(朴泰漢)과 박항한(朴恒漢)이다. 조카는 암행어사(暗行御史)로 유명한 충헌공(忠憲公) 박문수(朴文秀)이다.

1714년(숙종 40) 증광시에서 생원 1등 장원으로 합격하였고, 세자익위사위솔(世子翊衛司衛率)‧함양군수(咸陽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1728년(영조 4) 소론(少論)과 남인(南人) 인사들이 신임사화로 득세하였다가 영조의 등극으로 세력에서 밀려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이인좌(李麟佐)가 밀풍군(密豊君) 이탄(李坦)을 추대하여 권력을 잡기 위해 반란을 도모하였다. 이때 반란군에 가담한 정희량이 경상남도 함양(咸陽)에서 전라도 접경 지역으로 넘어가려 하자, 함양군수로 재임하고 있던 박사한(朴師漢)은 군사를 보내서 역적들을 토벌하려 하였고, 거짓으로 함양군수 노릇을 하던 최존서(崔存緖)와 허격(許格)을 잡아들였다. 또한, 적장(賊將) 심수명(沈壽明)과 가짜로 안음현감(安陰縣監) 노릇을 하던 신수헌(愼守憲)과 신수헌의 아들 신윤증(愼潤曾) 등을 잡아다가 효시(梟示)하는 등의 공로를 세웠다. 1729년(영조 5) 이인좌의 난 때 세운 공로를 헤아리던 중에 박사한이 적들이 성(城)으로 난입하였을 때 다른 고장으로 달아나는 바람에 성이 함락된 사실이 조정에 알려졌다. 이 일로 추문(推問)을 하고 벌을 줄 것을 청하는 장령(掌令) 이광부(李光溥) 등의 상소가 있었으나, 임금이 윤허하지 않아 무사하였다. 슬하에 아들 박만수(朴晩秀)‧박현수(朴賢秀)와 서자(庶子) 박동수(朴東秀)‧박중수(朴中秀)‧박공수(朴公秀)를 두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英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