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언(金昌彦)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C3DC5B8B1736X0 |
자(字) | 자미(子美) |
생년 | 1676(숙종 2) |
졸년 | 1722(경종 2) |
시대 | 조선중기 |
활동분야 | 문신 |
부 | 김수칭(金壽稱) |
[상세내용]
김창언(金昌彦)
1676년(숙종 2)∼1722년(경종 2).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자미(子美)이다.
조부는 김광찬(金光燦)이고, 부친은 학관(學官) 김수칭(金壽稱)이다.
관직은 찰방(察訪)에 올랐다. 1722년(경종 2)에 역모에 연루되어 하옥되었다. 죄목은 종제(從弟)였던 김창집(金昌集)과 흉모를 꾸며서, 김창도(金昌道)‧우홍채(禹洪采) 등으로 하여금 역모에 참여하도록 종용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국청(鞫廳)에 잡혀 들어가서 심문을 받았다. 김민택(金民澤)‧이덕준(李德駿)‧이상건(李尙建)‧이홍술(李弘述)‧전인좌(錢仁佐)‧조송(趙松)‧홍의인(洪義人)‧홍철인(洪哲人) 등과 함께 옥사를 치르다가 곤장을 맞아 47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영조가 즉위한 이후 신임사화 때 연루된 자들의 무고함이 드러나서, 1726년(영조 2)에 이명좌(李明佐)‧조송‧형의빈(邢儀賓) 등과 함께 관직이 회복되었다.
조부는 김광찬(金光燦)이고, 부친은 학관(學官) 김수칭(金壽稱)이다.
관직은 찰방(察訪)에 올랐다. 1722년(경종 2)에 역모에 연루되어 하옥되었다. 죄목은 종제(從弟)였던 김창집(金昌集)과 흉모를 꾸며서, 김창도(金昌道)‧우홍채(禹洪采) 등으로 하여금 역모에 참여하도록 종용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국청(鞫廳)에 잡혀 들어가서 심문을 받았다. 김민택(金民澤)‧이덕준(李德駿)‧이상건(李尙建)‧이홍술(李弘述)‧전인좌(錢仁佐)‧조송(趙松)‧홍의인(洪義人)‧홍철인(洪哲人) 등과 함께 옥사를 치르다가 곤장을 맞아 47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영조가 즉위한 이후 신임사화 때 연루된 자들의 무고함이 드러나서, 1726년(영조 2)에 이명좌(李明佐)‧조송‧형의빈(邢儀賓) 등과 함께 관직이 회복되었다.
[참고문헌]
경종실록, 영조실록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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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