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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익(尹志益)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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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계수(季受)
생년1668(현종 9)
졸년1729(영조 5)
시대조선중기
본관칠원(漆原)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윤지익(尹志益)
1668년(현종 9)∼1729년(영조 5). 조선 중기 문신. 자는 계수(季受)이다. 본관은 칠원(漆原)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이다.

청백리(淸白吏)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 윤석보(尹碩輔)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평창군수(平昌郡守) 윤유길(尹有吉)이고, 조부는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윤우정(尹遇丁)이다. 부친 통훈대부(通訓大夫) 홍주진관병마절제도위(洪州鎭管兵馬節制都尉) 윤서적(尹敍績)과 모친 강화부경력(江華府經歷) 박세기(朴世基)의 딸 나주박씨(羅州朴氏) 사이에서 4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 윤지임(尹志任)‧윤지화(尹志和)‧윤지순(尹志淳)이 있다. 부인은 통덕랑(通德郞) 정순양(鄭純陽)의 딸 온양정씨(溫陽鄭氏)이다.

1687년(숙종 13) 식년시 생원 1등 2위로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관직은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제천현감(堤川縣監)‧김제군수(金堤郡守)‧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공조정랑(工曹正郞)‧간성군수(杆城郡守)‧내섬시주부(內贍寺主簿)‧형조정랑(刑曹正郞)‧사도시첨정(司導寺僉正)‧정선군수(㫌善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러웠으며, 남이 자신을 험담하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고마운 사람으로 생각하였으며, 자신의 잘못된 점을 지적받으면 고치는 데 힘썼다.

정선군수 시절 흉년이 들었는데도 백성들로부터 거둬들여야 할 세금이 풍년이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많아 백성들이 힘들어하자 이를 개선하여 백성들을 힘들게 하지 않았다. 또 임지에 나아갈 때마다 농사철에 백성들을 불러내서 공적인 일을 시키는 법이 없었다.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윤경하(尹敬夏)‧윤경은(尹敬殷)‧윤경주(尹敬周)‧윤경명(尹敬明)이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西堂私載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