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이봉진(李鳳鎭)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774BD09C9C4B1806X0
자(字)오빈(梧賓)
생년1667(현종 8)
졸년1718(숙종 44)
시대조선중기
본관덕수(德水)
활동분야학자 > 유생

[상세내용]

이봉진(李鳳鎭)
1667년(현종 8)∼1718년(숙종 44). 조선 중기 유학자. 자는 오빈(梧賓)이다.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순천군수(順川郡守) 증영의정(贈領議政) 덕풍군(德豊君) 이통(李通)의 후손으로, 고조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증좌의정(贈左議政) 이경민(李景閔)이고, 증조부는 신천군수(信川郡守) 이조(李稠)이며, 조부는 홍산현감(鴻山縣監) 이희상(李喜相)이다. 부친 하양현감(河陽縣監) 이평(李坪)과 모친 판서(判書) 이집(李鏶)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두 명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현감(縣監) 김해(金澥)의 딸 상산김씨(商山金氏)이고, 둘째 부인은 박태휘(朴泰徽)의 딸 반남박씨(潘南朴氏)이다.

용모가 단정하였고,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6세 때 문장을 암송함에 막힘이 없었으며, 독서를 좋아하여 경전(經典) 및 사서(史書)를 두루 탐독하였고, 가진 뜻이 높아 벗들이 칭송하였다.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돈독하였으나 시비(是非)와 선악(善惡)에 대한 변별이 명확하였으며, 자기 행실에 독실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조모상을 당했을 때에는 성심을 다하였고, 예법(禮法)에 어긋남이 없었다. 병든 부친이 먹고 싶어 하던 전복을 구하지 못하자 부친상을 당한 후로 평생 전복을 입에 대지 않았다.

슬하에 5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이익(李瀷)‧이척(李滌)‧이역(李湙)‧이탁(李濯)‧이섭(李涉)이다.

[참고문헌]

謙齋集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