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양(趙進陽)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C9C4C591B1606X0 |
자(字) | 여명(汝明) |
자(字) | 자명(子明) |
생년 | 1666(현종 7) |
졸년 | 1719(숙종 45)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풍양(豊壤)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조진양(趙進陽)
1666년(현종 7)∼1719년(숙종 45).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여명(汝明)‧자명(子明)이다. 본관은 풍양(豊壤)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함경남도병마절도사(咸鏡南道兵馬節度使) 증좌찬성(贈左贊成) 한풍군(漢豊君) 조안국(趙安國)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의빈부도사(儀賓府都事) 증좌찬성 조간(趙侃)이고, 조부는 선공감첨정(繕工監僉正) 증영의정(贈領議政) 조형중(趙瑩中)이다. 부친 좌의정(左議政) 문효공(文孝公) 포저(浦渚) 조익(趙翼)과 모친 군수(郡守) 현덕량(玄德良)의 딸 성주현씨(星州玄氏) 사이에서 5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 조몽양(趙夢陽)과 동생 조복양(趙復陽)‧조내양(趙來陽)‧조현양(趙顯陽)이 있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홍익평(洪翼平)의 딸 남양홍씨(南陽洪氏)이고, 둘째 부인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안대항(安大恒)의 딸 광주안씨(廣州安氏)이다.
일찍이 문학과 덕행으로 이름이 났으며,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후덕하고 수수하였으며, 평소의 지조와 행실도 다른 유생과는 비할 수 없이 달라 친우들이 모두 재주를 중하게 여겼다.
1633년(인조 11) 식년시 생원 3등 62위로 합격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후 과거 공부를 폐하였으나 조부의 명으로 과거시험에 참여하여, 동생 조내양과 함께 초시에 합격하였다. 바로 벼슬길에 들어서 중앙의 여러 관사를 돌아, 외직으로 금천현감(衿川縣監)‧청양현감(靑陽縣監)‧덕산현감(德山縣監)‧단양현감(丹陽縣監) 등을 역임하다가 단양 근무지에서 죽었다.
묘는 충청북도 단양군에 있다.
함경남도병마절도사(咸鏡南道兵馬節度使) 증좌찬성(贈左贊成) 한풍군(漢豊君) 조안국(趙安國)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의빈부도사(儀賓府都事) 증좌찬성 조간(趙侃)이고, 조부는 선공감첨정(繕工監僉正) 증영의정(贈領議政) 조형중(趙瑩中)이다. 부친 좌의정(左議政) 문효공(文孝公) 포저(浦渚) 조익(趙翼)과 모친 군수(郡守) 현덕량(玄德良)의 딸 성주현씨(星州玄氏) 사이에서 5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 조몽양(趙夢陽)과 동생 조복양(趙復陽)‧조내양(趙來陽)‧조현양(趙顯陽)이 있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홍익평(洪翼平)의 딸 남양홍씨(南陽洪氏)이고, 둘째 부인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안대항(安大恒)의 딸 광주안씨(廣州安氏)이다.
일찍이 문학과 덕행으로 이름이 났으며,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후덕하고 수수하였으며, 평소의 지조와 행실도 다른 유생과는 비할 수 없이 달라 친우들이 모두 재주를 중하게 여겼다.
1633년(인조 11) 식년시 생원 3등 62위로 합격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후 과거 공부를 폐하였으나 조부의 명으로 과거시험에 참여하여, 동생 조내양과 함께 초시에 합격하였다. 바로 벼슬길에 들어서 중앙의 여러 관사를 돌아, 외직으로 금천현감(衿川縣監)‧청양현감(靑陽縣監)‧덕산현감(德山縣監)‧단양현감(丹陽縣監) 등을 역임하다가 단양 근무지에서 죽었다.
묘는 충청북도 단양군에 있다.
[참고문헌]
敬庵遺稿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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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