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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유(張聖維)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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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지숙(持叔)
생년1664(현종 5)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인동(仁同)
활동분야의원(醫院)
장천우(張天羽)

[상세내용]

장성유(張聖維)
1664년(현종 5)~미상. 조선 중기 의원(醫院). 자는 지숙(持叔)이다.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 현 서울)이다.

증조부는 장경인(張敬仁)이고, 조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장현(張炫)이다. 부친 장천우(張天羽)와 모친 조응현(趙應賢)의 딸 평양조씨(平壤趙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사역원정(司譯院正) 신찬(申燦)의 딸 고령신씨(高靈申氏)이다.

1684년(숙종 10) 식년시 잡과 의과에 합격하였다. 관직은 내의원정(內醫院正) 등을 역임하였다.

1701년(숙종 27) 대행왕비가 만방의 처방에도 의약을 효험을 보지 못하고 병으로 생을 마감한 일이 있었다. 이때 대행왕비를 저주하는 요역(妖逆) 사건의 배후에 장희빈(張禧嬪)의 오빠 장희재(張希載)가 자리하고 장희재의 첩과 종 등이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로 말미암아 대신들과 유생들이 장희재의 인척으로 흉모(凶謀)에 협조한 장대유(張大維)‧장천한(張天漢)‧장천강(張天綱)‧장태유(張泰維)‧장천핵(張天翮)‧장억기(張億基) 등과 함께 장성유(張聖維)의 처벌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고, 마침내 장성유도 국문(鞠問)에 처해졌다. 국문 시에 장성유는 장희재가 섬으로 유배된 후 소식이나 통하고자 2~3개월에 한 번씩 장희재의 집을 들렀을 뿐 흉모에 가담한 일은 결코 없다고 혐의를 부인하였다. 그러나 역모 연루자로 끝내 지목되어 유배(流配)되었다.

[참고문헌]

朝鮮時代雜科合格者總覽
肅宗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