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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내정(朴乃貞)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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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직경(直卿)
생년1664(현종 5)
졸년1735(영조 11)
시대조선중기
본관함양(咸陽)
활동분야문신
박유궤(朴由蔮)

[상세내용]

박내정(朴乃貞)
1664년(현종 5)~1735년(영조 11).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직경(直卿)이다. 본관은 함양(咸陽)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증조부는 박명립(朴名立)이고, 조부는 박지행(朴知行)이며, 부친은 박유궤(朴由蔮)이다. 외조부는 심지하(沈之河)이고, 처부는 이행술(李行述)이다. 종고조로 『동몽선습(童蒙先習)』을 저술한 소요당(逍遙堂) 박세무(朴世茂)가 있다.

1684년(숙종 10) 식년시 진사 3등에 53위로 합격하였으며, 1694년(숙종 20) 별시 병과 9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정언(正言)‧지평(持平)‧집의(執義)‧동래부사(東萊府使)‧승지(承旨)‧양양부사(襄陽府使)‧형조참판(刑曹參判)‧좌윤(左尹)‧판윤(判尹)‧호조판서(戶曹判書) 등을 역임하였으며,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갔다.

1661년(현종 2) 삼척부사(三陟府使) 허목(許穆)이 동해안의 해일 피해를 막기 위해 비문을 짓고 글을 새겨 정라진(汀羅津) 만리도(萬里島)에 척주동해비(滌州東海碑)를 세웠는데, 이때부터 해일이 일지 않자 사람들은 비석의 이름을 퇴조비(退潮碑) 또는 동해묘비(東海廟碑)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1708년(숙종 34) 어떤 사람이 비를 훼손시킨 후로 해일 피해가 다시 일어났다. 그러자 당시 부사였던 홍만기(洪萬紀)가 허목의 문하생인 한숙(韓塾)으로부터 원문을 구해 모양을 본떠 다시 비석에 글자를 새겼다. 그것을 1709년 2월 부사로 부임해 온 박내정(朴乃貞)이 죽관도(竹串島) 동쪽 산기슭에 비각을 세우고 비석을 옮겨왔다고 전해진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國朝文科榜目
숙종실록
기행가사자료선집(최강현, 국학자료원, 1996)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