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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규(梁聖揆)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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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일경(一卿)
호(號)휴재(休齋)
생년1661(현종 2)
졸년1707(숙종 33)
시대조선중기
본관남원(南原)
활동분야문신
양중하(梁重厦)

[상세내용]

양성규(梁聖揆)
1661년(현종 2)~1707년(숙종 33).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일경(一卿)이고, 호는 휴재(休齋)이다.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고조는 양황(梁榥)이고, 증조부는 양경갑(梁熲甲)이며, 조부는 양석구(梁錫九)이다. 부친은 참판(參判) 경도재(景陶齋) 양중하(梁重厦)이다. 외조부는 김응해(金應海)이다. 부인은 한흥군(韓興君) 이여발(李汝發)의 딸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1681년(숙종 7) 식년시 병과 18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같은 해 9월 21일 과거시험에서 수석을 하여 집을 하사받았으며, 관직은 공조참판(工曹參判)‧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예조참판(禮曹參判) 등을 역임하였다.

부친 양중하가 부정한 재물을 취한 죄로 봉고파직(封庫罷職)을 당하였는데, 부친이 저지른 죄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이 오도일(吳道一) 등에게 아침을 하여 주변으로부터 미움을 받은 일이 있었다.

예조참판 때 김창집(金昌集)‧이이명(李頤命)‧조태채(趙泰采)‧이건명(李健命)을 위리안치(圍籬安置) 시키자는 합계(合啓)를 올리는 데에 앞장섰다가 전라북도 김제(金堤)로 유배보내졌다.

사후에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추증되었다.

슬하에 아들 양정호(梁廷虎)를 두었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承政院日記
肅宗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