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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기(曺夏奇)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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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위숙(偉叔)
호(號)경안와(敬顔窩)
생년1660(현종 1)
졸년1738(영조 14)
시대조선중기
본관창녕(昌寧)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조하기(曺夏奇)
1660년(현종 1)∼1738년(영조 14) 5월 30일.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위숙(偉叔)이고, 호는 경안와(敬顔窩)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출신지는 서울이다.

증조부는 조문수(曺文秀)이고, 조부는 조한영(曺漢英)이다. 부친 조전주(曺殿周)와 모친 홍주원(洪柱元)의 딸 풍산홍씨(豊山洪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한여우(韓如愚)의 딸 청주한씨(淸州韓氏)이다.

1681년(숙종 7) 식년시 진사 3등 63위로 합격하였다. 관직은 1702년(숙종 28) 빙고별검(氷庫別檢) 임용을 시작으로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공조좌랑(工曹佐郞) 등을 거쳐 영덕현감(盈德縣監)으로 나가 청렴하게 고을을 다스렸다. 1716년(숙종 42) 금성현령(金城縣令)에 임용된 것을 시작으로 1729년(영조 5)에 이르기까지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공조좌랑(工曹佐郞)‧광흥창수(廣興倉守)‧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등을 두루 역임하고,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에 임용되었을 때는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다시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로 임용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향년 7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조명교(曺命敎)‧조명부(曺命敷)‧조명경(曺命敬)이다.

묘는 경기도 양주군(楊州郡)에 있다.

[참고문헌]

西堂私載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