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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웅(成壽雄)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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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대년(大年)
생년1659(효종 10)
졸년1718(숙종 44)
시대조선중기
본관창녕(昌寧)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성수웅(成壽雄)
1659년(효종 10)∼1718년(숙종 44) 11월 8일.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대년(大年)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출신지는 서울이다.

증조부는 성준영(成俊英)이고, 조부는 성원(成遠)이다. 부친 성창수(成昌秀)와 모친 임담(林墰)의 딸 나주임씨(羅州林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남유성(南有星)의 딸 의령남씨(宜寧南氏)이다.

어려서부터 기량이 우뚝하고 남달랐다. 일찍 부친을 여의고 집안에 일어난 재앙으로 어려움을 겪자 외가댁에서 자랐다. 장성해서는 문예(文藝)가 남들보다 뛰어났고, 특히 과거시험용 글인 공령문(功令文)을 잘 지었다.

1684년(숙종 10) 식년시 진사 2등 8위로 합격하였다. 1689년(숙종 15) 인현왕후 폐위 등 조정의 폐단을 보고 과거를 폐한 후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1697년(숙종 23)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임용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자 다시 도원도찰방(桃源道察訪)에 임용되었지만 모친의 상을 당하여 나아가지 않았다. 3년상을 마친 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사재감주부(司宰監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1705년(숙종 31) 공조좌랑(工曹佐郞)‧정랑(正郞) 등을 시작으로 1711년(숙종 37)에 이르기까지 전주부판관(全州府判官)‧금천군수(金川郡守) 등을 역임하고, 1715년(숙종 41) 부평부사(富平府使)에 임용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717년(숙종 43) 사옹원첨정(司饔院僉正)을 거쳐 평양서윤(平壤庶尹)으로 나가서는 송사(訟事)를 공평하게 처리하는 등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향년 6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성덕형(成德馨)‧성덕장(成德章)이다.

묘는 경기도 김포(金浦)에 있다.

[참고문헌]

西堂私載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