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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두동(羅斗冬)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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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간이(幹而)
생년1658(효종 9)
졸년1728(영조 4)
시대조선중기
본관나주(羅州)
활동분야유생
나진(羅𥘼)

[상세내용]

나두동(羅斗冬)
1658년(효종 9)~1728년(영조 4). 조선 중기 유생. 자는 간이(幹而)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거주지는 전라남도 나주(羅州)이다.

부친은 중직대부(中直大夫) 행의금부도사(行義禁府都事) 나진(羅𥘼)이다. 형은 나두춘(羅斗春)‧나두하(羅斗夏)‧나두추(羅斗秋)이다. 서형(庶兄)은 나두윤(羅斗閏)이고, 서제(庶弟)는 나두절(羅斗節)‧나두시(羅斗時)이다.

1693년(숙종 19) 식년시에 생원 3등 67위로 합격하였다.

1728년(영조 4) 신임사화로 득세하던 소론(少論)과 남인(南人)이 영조의 등극으로 세력에서 밀려난 뒤 이인좌(李麟佐)를 중심으로 정희량(鄭希亮) 등이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증손(曾孫) 밀풍군(密豊君) 이탄(李坦)을 추대하는 반란을 도모하였다. 이때 가문 사람인 나만치(羅晩致)‧나숭대(羅崇大) 등과 더불어 가병(家兵)을 양성하고 세력을 키우다가 이인좌의 난에 동참하였다. 그러나 거사에 실패한 후 참형(斬刑)에 처해졌고, 부인과 자식들은 노비로 전락했으며, 가산(家産)이 몰수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나두동(羅斗冬)의 사후 전라북도 남원(南原)에서 치른 장례에 남원현감(南原縣監) 최집(崔■)이 노역 인부를 제공하고, 환곡(還穀)을 넉넉히 지급하였으며, 빼앗은 고을 백성의 종중(宗中) 산을 장지(葬地)로 제공하였으며, 관영 창고의 물품을 장례의 제청(祭廳)에 쓰는 등의 불법적인 원조가 드러나면서 1730년(영조 6)에 파직되었다. 이인좌의 난 이후 나씨는 둘로 나뉘었는데, 난에 동참한 나씨는 본관이 나주이며, 동참하지 않은 나씨는 본관을 금성(錦城)으로 바꾸었다.

슬하에 아들 나만조(羅晩肇)가 있고, 이인좌의 난에 함께 가담하였다가 유배된 진주목사(晉州牧使) 신후삼(愼後三)에게 시집간 딸이 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英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