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하언(曺夏彦)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D558C5B8B1657X0 |
자(字) | 미백(美伯) |
호(號) | 우의당(愚意堂) |
생년 | 1657(효종 8) |
졸년 | 1699(숙종 25)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창녕(昌寧)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조하언(曺夏彦)
1657년(효종 8)∼1699년(숙종 25).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미백(美伯)이고, 호는 우의당(愚意堂)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이다.
증조부는 공조참판(工曹參判) 설정(雪汀) 조문수(曺文秀)이고, 조부는 예조참판(禮曹參判) 회곡(晦谷) 조한영(曺漢英)이다. 부친 통훈대부(通訓大夫) 서원진관병마동첨절제사(西原鎭管兵馬同僉節制使) 조전주(曹殿周)와 모친 영안위(永安尉) 문의공(文懿公) 홍주원(洪柱元)의 딸 풍산홍씨(豊山洪氏) 사이에서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 조하기(曹夏奇)‧조하장(曹夏章)이 있다. 부인은 돈녕부사(敦寧府事) 이정영(李正英)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1682년(숙종 8) 증광시 진사 3등 7위로 합격한 후 높은 학식과 덕행으로 인해 성균관에까지 이름이 알려졌다. 경릉참봉(敬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사후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타고난 성품이 바르고 단정하였고, 하늘이 낸 효자였다. 총명한데다 무슨 일이든지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으며, 고금의 서화(書畫)와 금석문(金石文)을 모으고 감상하기를 좋아하였다.
간재(艮齋) 최익서(崔翼瑞)와 교유하였다.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조명종(曺命宗)‧조명재(曺命宰)‧조명인(曺命寅)이다.
저서로 『우의당유고(愚意堂遺稿)』가 있다.
증조부는 공조참판(工曹參判) 설정(雪汀) 조문수(曺文秀)이고, 조부는 예조참판(禮曹參判) 회곡(晦谷) 조한영(曺漢英)이다. 부친 통훈대부(通訓大夫) 서원진관병마동첨절제사(西原鎭管兵馬同僉節制使) 조전주(曹殿周)와 모친 영안위(永安尉) 문의공(文懿公) 홍주원(洪柱元)의 딸 풍산홍씨(豊山洪氏) 사이에서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 조하기(曹夏奇)‧조하장(曹夏章)이 있다. 부인은 돈녕부사(敦寧府事) 이정영(李正英)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1682년(숙종 8) 증광시 진사 3등 7위로 합격한 후 높은 학식과 덕행으로 인해 성균관에까지 이름이 알려졌다. 경릉참봉(敬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사후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타고난 성품이 바르고 단정하였고, 하늘이 낸 효자였다. 총명한데다 무슨 일이든지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으며, 고금의 서화(書畫)와 금석문(金石文)을 모으고 감상하기를 좋아하였다.
간재(艮齋) 최익서(崔翼瑞)와 교유하였다.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조명종(曺命宗)‧조명재(曺命宰)‧조명인(曺命寅)이다.
저서로 『우의당유고(愚意堂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艮齋集
艮齋集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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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