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유재(柳栽)

[요약정보]

UCIG002+AKS-KHF_12C720C7ACFFFFB1651X0
자(字)운경(雲卿)
생년1651(효종 2)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진주(晉州[土])
활동분야문신
유명전(柳命全)

[상세내용]

유재(柳栽)
1651년(효종 2)~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운경(雲卿)이다.

본관은 진주(晉州[土])이고, 출신지는 한양(漢陽)이다.

조부는 유적(柳頔)이며, 친조부는 유경(柳熲)이다. 부친은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유명전(柳命全)이고, 처부는 민점(閔點)이다.

1673년(현종 14) 23세의 나이로 식년시 진사에 합격하여 교리(校理) 관직을 제수 받았다. 1679년(숙종 5) 29세 때, 정시(庭試)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 정자(正字)가 되었다. 남인인 허견(許堅)과 친하여 자주 집에 드나들었다. 1680년(숙종 6) 경신환국(庚申換局) 때, 허견이 역모로 죽게 되자, 삭거사판(削去仕版: 사판에서 이름을 삭제함, 죄를 지은 관리를 처벌하는 규정의 하나) 되었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다시 복위되어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이 되었다. 1690년(숙종 16) 동궁(東宮)의 문학(文學)이 되었고, 도당(都堂)에서 홍문록(弘文錄: 홍문관(弘文館)의 교리(校理)‧수찬(修撰)을 선임하는 기록)을 기록할 사람을 뽑을 때에 선발되었다. 또한 홍문관 부수찬(副修撰)과 교리를 지냈고, 1691년(숙종 23) 홍문관 수찬이 되었다. 1692년(숙종 24)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 사헌부 지평, 홍문관 부수찬‧교리를 지냈고, 1693년(숙종 19) 다시 홍문관 수찬이 되었다.『사기』에는 능통하지 못했다고 하였는데, 같은 해에 경연(經筵)에서 연지(宴氏: 흉노(匈奴)의 왕후(王后)를 일컫는 칭호)의 음을 ‘알씨(閼氏)’라고 잘못 읽었고, 사운(四韻: 네 개의 운각(韻脚) 즉 여덟 구절로 된 율시(律詩))을 응제(應製)하면서 말이 사리에 맞지 않아 비웃음을 받았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기년편고(紀年便考)

[집필자]

이후남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