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지(金麟至)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778C9C0B1650X0 |
자(字) | 성응(聖應) |
생년 | 1650(효종 1) |
졸년 | 1733(영조 9)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안동(安東[舊]) |
활동분야 | 문신 |
부 | 김추만(金秋萬)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인지(金麟至)
1650년(효종 1)~1733년(영조 9).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성응(聖應)이다. 본관은 안동(安東[舊])이다.
증조부는 김시양(金時讓)이고, 조부는 김휘(金徽)이며,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의금부도사(行義禁府都事) 김추만(金秋萬)이다. 형은 김봉지(金鳳至)이다. 부인은 서윤(庶尹) 오시주(吳始周)의 딸이다.
1675년(숙종 1) 식년시에서 생원 3등 51위로 합격하였다.
1699년(숙종 25) 증광시에서 을과 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그러나 과거시험장에서 감독관들과 결탁하여, 답안지를 고치고 피봉을 바꾸는 등의 부정을 저지른 혐의로 의금부(義禁府)에 투옥되어 심문을 받았다. 1701년(숙종 27)에는 임금으로부터 직접 심문을 당하였는데도,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였다. 그러나 결국 급제를 취소당하고, 순천(順天)의 방답(防踏)으로 유배되었다가 후에 다시 제주 대정(大靜)과 정의(旌義)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84로 죽었다.
증조부는 김시양(金時讓)이고, 조부는 김휘(金徽)이며,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의금부도사(行義禁府都事) 김추만(金秋萬)이다. 형은 김봉지(金鳳至)이다. 부인은 서윤(庶尹) 오시주(吳始周)의 딸이다.
1675년(숙종 1) 식년시에서 생원 3등 51위로 합격하였다.
1699년(숙종 25) 증광시에서 을과 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그러나 과거시험장에서 감독관들과 결탁하여, 답안지를 고치고 피봉을 바꾸는 등의 부정을 저지른 혐의로 의금부(義禁府)에 투옥되어 심문을 받았다. 1701년(숙종 27)에는 임금으로부터 직접 심문을 당하였는데도,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였다. 그러나 결국 급제를 취소당하고, 순천(順天)의 방답(防踏)으로 유배되었다가 후에 다시 제주 대정(大靜)과 정의(旌義)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84로 죽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