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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근(李東根)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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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진백(震伯)
생년1644(인조 22)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한산(韓山)
활동분야문신
이오빈(李梧賓)
생부이인빈(李寅賓)

[상세내용]

이동근(李東根)
1644년(인조 22)~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진백(震伯)이다.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거주지는 한양이다.

증조부는 이경전(李慶全)이고, 조부는 이후(李厚)이다. 부친은 통덕랑(通德郞) 이오빈(李梧賓)이고, 생부는 통덕랑 이인빈(李寅賓)이다. 외조부는 정원첨(鄭元詹)이고, 동생으로 이효근(李孝根)과 이도근(李道根)이 있다.

1669년(현종 10) 식년시 진사 3등 34위로 합격하였고, 1689년(숙종 15) 증광시 문과에 을과 4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필선(弼善)‧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등을 역임하였다.

1691년(숙종 17) 김석주(金錫胄)를 도와 1680년(숙종 6)에 옥사(獄事)를 일으킨 조사석(趙師錫)이 숙종의 은혜를 받아 관직을 누리고 살았음에도 왕세자 책봉일에도 참석하지 않은 죄를 물어 파직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려 윤허를 받았다. 같은 해에 1680년 옥사 관련자로 죄를 얻어 서북(西北) 지역으로 유배를 가 있는 민정중(閔鼎重)을 절도(絶島)로 이배(移配)해줄 것을 청하여 숙종의 윤허를 받았다. 1694년(숙종 20) 정언 임원구(任元耉)와 이희무(李喜茂)로부터 조사석이 왕세자 책봉일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숙종이 이전에 대궐에 출입하지 말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인데 도리어 죄를 묻게 한 이동근(李東根)을 귀양 보내야 한다는 상소문이 올려졌다. 이 일로 유배를 갔다가 1695년(숙종 21)에 유배지에서 풀려났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國朝文科榜目
肅宗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