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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재(柳尙載)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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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유원(悠遠)
생년1644(인조 22)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문화(文化)
활동분야문신
유성오(柳誠吾)

[상세내용]

유상재(柳尙載)
1644년(인조 22)~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유원(悠遠)이다. 본관은 문화(文化)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증조부는 유몽익(柳夢翼)이고, 조부는 유속(柳洬)이며,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순천진관병마절제도위(順天鎭管兵馬節制都尉) 유성오(柳誠吾)이다. 외조부는 박동량(朴東亮)이고, 처부는 송국신(宋國藎)이다. 형으로 유상운(柳尙運)이 있다.

1666년(현종 7) 식년시에 진사 3등 59위로 합격하였으며, 1683년(숙종 9) 증광시에 을과 7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검열(檢閱)‧정언(正言)‧보덕(輔德)‧집의(執義)‧사간(司諫)‧교리(校理)‧부응교(副應敎)‧수찬(修撰)‧승지(承旨)‧대사간(大司諫) 등을 역임하였다.

1685년(숙종 11) 문성공(文成公) 이이(李珥)가 윤증(尹拯) 등으로부터 무고하게 욕을 당하자 이에 대해 변호하였다. 1688년(숙종 14) 집의(執義) 이돈(李墩)이 이선(李選)의 과거 허물을 들어 논박한 일로 책임을 지고 물러나자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을 임명받았는데, 유상재(柳尙載) 역시 그 자리를 내놓았다. 1695년(숙종 21) 호조판서(戶曹判書) 이세화(李世華)가 궁가(宮家)의 물자를 아껴 써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문을 올리자 숙종은 병조(兵曹)에서 공로에 따른 상을 내릴 때 정확하게 하라는 명을 내렸는데, 유상재가 그것은 너무 가혹한 부분이 있으니 거두어달라는 청을 올려 윤허를 받았다. 또 같은 해에 언로(言路)를 열어줄 것을 청하였으나 윤허 받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國朝文科榜目
肅宗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