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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조(金慶祖)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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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효길(孝吉)
호(號)심곡(深谷)
생년1583(선조 16)
졸년1645(인조 23)
시대조선중기
본관풍산(豊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김경조(金慶祖)
1583년(선조 16)∼1645년(인조 23). 조선 중기 문신. 자는 효길(孝吉)이고, 호는 심곡(深谷)이다.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거주지는 경상북도 안동(安東)이다.

증조부는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증직제학(贈直提學) 김의정(金義貞)이고, 조부는 장례원사의(掌隷院司議) 증좌승지(贈左承旨) 김농(金農)이다. 부친 산음현감(山陰縣監)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 김대현(金大賢)과 모친 충의위(忠義衛) 이찬금(李鑽金)의 딸 전주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 아호공(鶴湖公) 김봉조(金奉祖)‧김영조(金榮祖)‧김창조(金昌祖)와 동생 김연조(金延祖)‧김응조(金應祖)‧김술조(金述祖)‧김염조(金念祖)‧김숭조(金崇祖)가 있다. 부인은 장여직(張汝)의 딸 인동장씨이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성품이 남달랐으며 대인의 풍모가 있었다.

1602년(선조 35) 부친이 산음(山陰) 근무지에서 돌아가셨을 때 겨우 관례를 치룬 나이로 형제들과 산음에서 고향으로 관을 운반하여 상을 치렀다.

1609년(광해군 1) 성균관생원이 되었다. 1626년(인조 4) 모친이 맏형 김봉조의 익산(益山) 근무지에서 죽자, 다시 천리 길을 관을 운반한 후 다시는 과거시험을 보지 않았다.

관직은 1629년(인조 7) 내시교관(內寺敎官)을 시작으로 주부(主簿)‧의령현감(宜寧縣監)‧이산현감(尼山縣監) 등을 지냈다. 의령현감 시절 치적이 높아 관찰사에게 표창을 받고 1년 더 임기를 연장하였다. 이산현감 시절에는 향족의 세력이 강하고 교활하여 다스리기 어려운 고장으로 이름이 났었으나, 교활한 자들을 엄하게 다스려 감히 소란을 떨지 못하게 하여 또다시 표창을 받았다. 이산에 있는 동안 막내아들이 죽자 관직을 버리고 경상북도 안동으로 돌아와 칩거하였다.

묘는 경상북도 안동 풍산읍 보림산(甫林山)에 있다.

[참고문헌]

訥隱集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