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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제(洪受濟)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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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방숙(方叔)
생년1637(인조 15)
졸년1698(숙종 24)
시대조선중기
본관남양(南陽[唐])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홍수제(洪受濟)
1637년(인조 15)∼1698년(숙종 24).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방숙(方叔)이다. 본관은 남양(南陽[唐])이고, 출신지는 서울이다.

조부는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 홍명원(洪命元)이다. 부친 합천군수(陜川郡守) 홍처심(洪處深)과 모친 좌참찬(左參贊) 증영의정(贈領議政) 박동량(朴東亮)의 딸 나주박씨(羅州朴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쌍청당(雙淸堂) 송유(宋愉)의 후손인 화순현감(和順縣監) 송지렴(宋之濂)의 딸 숙인(淑人) 은진송씨(恩津宋氏)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특히 암기력이 뛰어났다.

1669년(현종 10) 식년시 진사과 1등 2위로 합격하였다.

1674년(현종 15) 빙고별검(氷庫別檢)에 제수되었으며, 1677년(숙종 3) 의금부경력(義禁府經歷)에 임명되었으나 곧바로 그해 겨울 고령현감(高靈縣監)에 임명되었다. 현감으로 재직할 당시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1680년(숙종 6) 임기를 마치고 돌아왔으며 그해 모친의 상사(喪事)를 당하였다.

1683년(숙종 9)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에 임명되었으나, 다시 임피현감(臨陂縣監)으로 나갔다. 당시 임피현의 많은 백성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적극적인 진휼정책을 펴 백성을 구제하는 데 힘썼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 등의 사건들로 정치가 어수선 하자 가솔들을 이끌고 잠시 서울을 떠났다.

1695년(숙종 21) 공조정랑(工曹正郞)에 임명되었으나, 북방에 큰 흉년이 들자 황주판관(黃州判官)으로 급파되어 진휼책을 펴고 관가의 재정을 확충하는 데 힘썼다.

1698년(숙종 24) 봄 사직하고 돌아왔으나 병으로 자리에 누워 그해 향년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5남을 두었는데, 홍우현(洪禹賢)‧홍우천(洪禹天)‧홍우칭(洪禹稱)‧홍우전(洪禹傳)‧홍우선(洪禹宣)이다.

[참고문헌]

晩靜堂集

[집필자]

고윤수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