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오시대(吳始大)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624C2DCB300B1634X0
자(字)대이(大而)
생년1634(인조 12)
졸년1694(숙종 20)
시대조선중기
본관동복(同福)
활동분야문신
오정원(吳挺垣)

[상세내용]

오시대(吳始大)
1634년(인조 12)~1694년(숙종 20).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대이(大而)이다. 본관은 동복(同福)이고, 출신지는 한양(漢陽)이다.

증조부는 오백령(吳百齡)이고, 조부는 오횡(吳竑)이며, 부친은 오정원(吳挺垣)이다. 외조부는 윤의립(尹毅立)이고, 처부는 이성징(李星徵)이다. 형은 오시수(吳始壽)이고, 동생은 오시형(吳始亨)‧오시적(吳始績)이다.

1660년(현종 1) 증광시에 생원 1등 1위로 합격하였고, 1676년(숙종 2년) 정시에서 병과 2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676년(숙종 2) 6월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이 되었고, 12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이 되었다. 1677년(숙종 3) 2월 13일 홍문록(弘文錄)에 올라 같은 달 18일에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6월에는 이조좌랑(吏曹佐郞)이 되었고, 8월에 홍문관수찬(修撰)이 되었다가 9월에 다시 이조좌랑이 되었다.

1679년(숙종 5)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가 되었으나, 1680년(숙종 6) 복선군(福善君) 이남(李柟)의 역모사건으로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이 일어났을 때, 복선군의 외숙부 오정창(吳挺昌)이 숙부라는 이유로 연좌되어 파직되었고, 귀양을 살았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배소에서 풀려났으며, 8월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에 임명되었다. 1690년(숙종 16) 승정원승지(承政院承旨)가 되었고, 1692년(숙종 18) 강화부유수(江華府留守)가 되었다. 1694년(숙종 20) 3월 16일에는 함경도관찰사(咸鏡道觀察使)가 되었으나, 4월의 갑술환국(甲戌換局)에 연루되면서 임소에서 자결하였다. 묘는 충청남도 공주시(公州市) 의당면(儀堂面)에 있다.

[참고문헌]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