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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李𩡘)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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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면여(勉餘)
호(號)양계(陽溪)
생년1626(인조 4)
졸년1688(숙종 14)
시대조선중기
본관성산(星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이하(李𩡘)
1626년(인조 4) 6월 3일∼1688년(숙종 14) 4월 8일.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면여(勉餘)이고, 호는 양계(陽溪)이다. 본관은 성산(星山)이고, 본적은 경상북도 성주(星州)이며, 출신지는 경상북도 선산(善山)이다.

증조부는 이찬귀(李纘貴)이고, 조부는 이윤무(李胤武)이다. 부친 이상규(李尙䂓)와 모친 황하징(黃河徵)의 딸 덕산황씨(德山黃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김희장(金喜長)의 딸 순천김씨(順天金氏)이고, 둘째 부인은 황후경(黃後瓊)의 딸 창원황씨(昌原黃氏)이다.

송암(松庵) 이구(李坵)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경사(經史)를 탐독하고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에 정진하였다.

1651년(효종 2) 식년시 생원 2등 8위로 합격하였고, 1654년(효종 5) 식년시 갑과 2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1658년(효종 9) 안동교수(安東敎授)를 시작으로 전적(典籍)‧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예조정랑(禮曹正郞) 겸 춘추관기사관(兼春秋館記事官) 등을 역임하였으며, 1661년(현종 2) 중직(中直)에 임용되었으나 병으로 사양하고 귀향하였다. 1663년(현종 4) 만경현감(萬頃縣監)으로 나가 다스린 공적이 훌륭하여 포계(褒啓)를 입었지만, 일 년도 되지 않아 돌아온 후 두문불출하고 독서에 전념하며 『대동유선록(大東儒先錄)』을 편찬하였다. 1675년(숙종 1) 다시 관직에 나아가 호조좌랑(戶曹佐郞)‧예빈시정하(禮賓寺正夏)‧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지제교(知製敎) 등을 역임한 후, 1679년(숙종 5)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올라 형조참의(刑曹參議)가 되었으나 반대당의 무고(誣告)로 삼강(三江)에 유배되었다. 1686년 유배지가 흥양(興陽)으로 옮겨졌는데, 그곳에서 향년 63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이수갑(李壽甲)‧이수인(李壽寅)이다. 묘는 경상북도 김산(金山)에 있다.

저서로 『양계집(陽溪集)』이 있다.

[참고문헌]

陽溪集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