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흥(金振興)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9C4D765B1621X0 |
자(字) | 대이(待而) |
호(號) | 송계(松溪) |
생년 | 1621(광해군 13)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선산(善山) |
활동분야 | 예술‧체육 > 서예가 |
[상세내용]
김진흥(金振興)
1621년(광해군 13)∼미상. 서예가.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흥지(興之) 또는 대이(待而), 호는 송계(松溪).
1654년 역과(譯科)에 급제하였는데, 글씨를 잘 써 전문학관(篆文學官)에 등용되었으며, 관직은 호군(護軍)에 이르렀다.
여이징(呂爾徵)에게 전(篆)을 익혔고, 명나라의 사신 주지번(朱之蕃)으로부터 전결(篆訣)을 얻어 이를 꾸준히 연구하여 마침내 38체(體)에 통달하여 전서(篆書)로 그 이름을 떨쳤다.
그가 쓴 것으로 『대학장구(大學章句)』‧『전해심경(篆海心鏡)』이 있는데, 송시열(宋時烈)‧이서하(李瑞夏)‧김만기(金萬基)‧여성제(呂聖齊)의 서발(序跋)을 붙여 간행하였다. 이밖에도 『송계각체전첩(松溪各體篆帖)』이 있다. 『대학장구』는 『대학』을 38체로 쓴 것으로, 대소전(大小篆)을 비롯하여 고문기자(古文奇字) 구룡운로체(龜龍雲露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나 글자의 수는 많지 않다.
또한, 당시의 전운서(篆韻書)들이 소략하고 법에 어긋나므로, 그는 옥근전(玉筋篆)으로 『전해심경』이라는 운서를 지었다(5권 2책). 각 글자의 변법(變法)을 연구하여 기문이법(奇文異法)까지 다양하게 실었다.
그 중에는 비록 무리한 변법에 의한 오류도 없지는 않으나, 당시로는 전서대전(全書大全)이라고 여길 만큼 내용이 풍부하며, 또한 김진흥 자신이 필생의 작업으로 이룩하였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서예사 연구자료로서 적지않은 가치가 있다.
1654년 역과(譯科)에 급제하였는데, 글씨를 잘 써 전문학관(篆文學官)에 등용되었으며, 관직은 호군(護軍)에 이르렀다.
여이징(呂爾徵)에게 전(篆)을 익혔고, 명나라의 사신 주지번(朱之蕃)으로부터 전결(篆訣)을 얻어 이를 꾸준히 연구하여 마침내 38체(體)에 통달하여 전서(篆書)로 그 이름을 떨쳤다.
그가 쓴 것으로 『대학장구(大學章句)』‧『전해심경(篆海心鏡)』이 있는데, 송시열(宋時烈)‧이서하(李瑞夏)‧김만기(金萬基)‧여성제(呂聖齊)의 서발(序跋)을 붙여 간행하였다. 이밖에도 『송계각체전첩(松溪各體篆帖)』이 있다. 『대학장구』는 『대학』을 38체로 쓴 것으로, 대소전(大小篆)을 비롯하여 고문기자(古文奇字) 구룡운로체(龜龍雲露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나 글자의 수는 많지 않다.
또한, 당시의 전운서(篆韻書)들이 소략하고 법에 어긋나므로, 그는 옥근전(玉筋篆)으로 『전해심경』이라는 운서를 지었다(5권 2책). 각 글자의 변법(變法)을 연구하여 기문이법(奇文異法)까지 다양하게 실었다.
그 중에는 비록 무리한 변법에 의한 오류도 없지는 않으나, 당시로는 전서대전(全書大全)이라고 여길 만큼 내용이 풍부하며, 또한 김진흥 자신이 필생의 작업으로 이룩하였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서예사 연구자료로서 적지않은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槿域書畵徵(吳世昌, 啓明俱樂部, 1928)
[집필자]
이완우(李完雨)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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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