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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하징(蔡河徵)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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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희서(羲瑞)
생년1619(광해군 11)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인천(仁川)
활동분야유생
채상주(蔡尙周)

[상세내용]

채하징(蔡河徵)
1619년(광해군 11)~미상. 조선 중기 유생. 자는 희서(羲瑞)이다. 본관은 인천(仁川)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함창(咸昌)이다.

부친은 행충좌위부사과(行忠佐衛副司果) 채상주(蔡尙周)이다.

1657년(효종 8) 식년시에 생원 2등 12위로 합격하였다.

1678년(숙종 4) 영남유생 이재헌(李在憲)이 송시열(宋時烈)을 모함하는 상소를 올린 것에 대하여 기해예송(己亥禮訟) 때에 송시열이 주장한 자의대비(慈懿大妃) 기년복은 제도에 따라 시행한 것으로 왕통(王統)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며 대척(對斥: 서로 쟁변하는 것)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에 숙종은 도로 상소를 내어주라고 하였으나, 다음날 비국(備局)과 대신이 앞으로의 폐단을 근절하기 위해서 변방에 정배를 해야 한다고 하여 받아들였다. 배소를 정하는 문제로 판서(判書) 남용익(南龍翼)과 참의(參議) 강수학(康遂學)이 다투어 처음에는 경상남도 창원(昌原)에서 평안북도 강계(江界)로 바꾸어 정했으나, 승정원(承政院)에서 해당 당상의 추고를 청하면서까지 함경도 경흥부(慶興府)로 유배지를 정했다.『송자대전(宋子大全)』에 송시열이 채하징(蔡河徵)을 생각하며 지은 ‘북쪽 변방에 귀양 간 두 사람을 생각하다(憶塞北二謫)’라는 칠언율시가 있다. 1680년(숙종 6) 4월 24일에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유배지에서 풀려났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宋子大全練藜室記述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