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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鄭勔)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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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여강(汝强)
호(號)여우(如愚)
생년1614(광해군 6)
졸년1687(숙종 13)
시대조선중기
본관해주(海州)
활동분야문신
정도창(鄭道昌)
생부정도형(鄭道亨)

[상세내용]

정면(鄭勔)
1614년(광해군 6)~1687년(숙종 13).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여강(汝强)이고, 호는 여우(如愚)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증조부는 정연(鄭淵)이고, 조부는 정호학(鄭好學)이며, 부친은 정도창(鄭道昌)이고, 생부는 정도형(鄭道亨)이다. 외조부는 이세량(李世良)이고, 처부는 구인영(具仁榮)이다.

1649년(인조 27) 별시에 병과 5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673년(현종 14)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이 되었다. 1680년(숙종 6) 선원보(璿源譜: 왕실족보)를 바로잡은 공로(功勞)로 보사원종공신록(保社原從功臣錄)에 수록되었다. 같은 해 판교(判敎)로 있을 때 아무런 공로도 없이 단지 윤선도(尹善道)를 옹호하는 소장을 올렸다는 이유로 현종(顯宗)의 종묘에 부제(祔祭)한 조경(趙絅)을 출향(黜享)하라는 상소를 올렸다. 8월엔 사헌부정언(司憲府正言)에, 9월에는 장령(掌令)에, 11월에는 헌납(獻納)에 제수되었다. 이해 12월 다시 조경을 현종의 종묘에서 출향해야 한다고 상소하였다. 1683년(숙종 9) 승정원승지(承政院承旨)가 되었다. 1684년(숙종 10) 1월 일본(日本)에서 온 서계(書契)를 사관과 서로 돌려보고 베껴 써 둔 것이 외부로 유출되었는데, 일본군이 언제 들이 닥칠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백성들이 도성 밖으로 피난 가는 소란이 몇 달간 계속되었다. 이 일로 파직되었다가 같은 해 4월 다시 승지에 제수되었다. 승지로 있을 때 서인이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으로 나뉘어 논쟁이 격심해지자 송시열(宋時烈)과 송준길(宋浚吉)의 논의에 찬동하였다.

경연참찬관 겸 부제학(經筵參贊官 兼 副提學)을 지냈다.

해주 정씨 가문의 족보 『갑술보(甲戌譜)』를 편집하였으며, 사후에 아들 정계주(鄭啓周)가 1694년(숙종 20)에 출간하였다.

아들 정계주를 두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