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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건(洪仁健)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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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응강(應剛)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남양(南陽[唐])
활동분야문신
홍덕렴(洪德濂)

[상세내용]

홍인건(洪仁健)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응강(應强)‧응강(應剛)이다. 본관은 남양(南陽[唐])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이다.

증조부는 홍귀손(洪貴孫)이고, 조부는 홍이평(洪以平)이며, 부친은 정략장군(定略將軍) 충무위부사직(忠武衛副司直) 홍덕렴(洪德濂)이다. 외조부는 이세성(李世成)이고, 처부는 민의(閔禕)이다. 동생 홍인준(洪仁俊)‧홍인걸(洪仁傑)‧홍인간(洪仁侃)이 있다.

1552년(명종 7) 식년시 진사 2등에 2위로 합격하였으며, 1568년(선조 1) 증광시 을과에 2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정언(正言)‧헌납(獻納)‧지평(持平)‧경상군적경차관(慶尙軍籍敬差官) 등을 역임하였으며, 품계는 봉렬대부(奉列大夫)에 올랐다.

1573년(선조 6) 정언 재임 시절, 대간(臺諫) 때 일본 사신이 들어올 때 갖고 오던 짐보따리를 열어보길 청하였던 일로 자숙할 것을 청하고 물러났는데, 이 일로 벼슬이 갈리었다. 1574년(선조 7) 헌납 재임 시절 영의정 이탁(李鐸), 특진관(特進官) 강섬(姜暹)‧허세린(許世麟) 등과 함께 모여 날씨가 추운 관계로 임금과 함께 경전을 읽는 조강(朝講)을 정지할 것을 청하였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같은 해에 의정부(議政府)가 마감한 홍문록(弘文錄)에서 5점을 얻었다. 슬하에 아들 신천군수(信川郡守) 괴음(槐陰) 홍준(洪遵)을 두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國朝文科榜目
宣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