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인(李公仁)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ACF5C778D1522X0 |
자(字) | 제옹(濟翁) |
생년 | ?(미상) |
졸년 | 1522(중종 17)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광산(光山)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이달선(李達善)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공인(李公仁)
미상~1522년(중종 17).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제옹(濟翁)이다.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증조부는 『고려사』 개수와 『태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던 이선제(李先齊)이고, 조부는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성종 대에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와 이후 예조참판(禮曹參判)에 추증된 이형원(李亨元)이다. 부친은 상의원정(尙衣院正) 지제교(知製敎)를 지냈으나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유배된 이달선(李達善)이다. 모친은 안요경(安堯卿)의 딸이다. 처부는 신영명(愼榮命)이다.
1513년(중종 8) 식년시에 진사 3등 54위로 합격하였고, 1519년(중종 14) 식년시 문과에 을과 6위로 급제하였다.
1519년(중종 14) 조광조(趙光祖)를 비롯한 사림들이 중종반정에 공을 세운 훈구공신들의 작위와 상을 박탈해야한다는 위훈삭제(僞勳削除)사건을 일으켰을 때, 이공인(李公仁)은 예문관대교(藝文館待敎)의 직임에서 해임되었다가 복직되었다. 이후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으로서 조광조를 지속해서 옹호하였다. 1521년(중종 16)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로 있으면서 대간(臺諫)의 위상을 확립하고자 노력하였고, 1522년(중종 17) 홍문관박사(弘文館博士)에 제수되었다. 같은 해 세상을 떠났을 때 임금이 그의 죽음을 듣고 쌀‧콩‧장례도구를 하사하였다. 슬하에 아들로 이중호(李仲虎)가 있다.
증조부는 『고려사』 개수와 『태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던 이선제(李先齊)이고, 조부는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성종 대에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와 이후 예조참판(禮曹參判)에 추증된 이형원(李亨元)이다. 부친은 상의원정(尙衣院正) 지제교(知製敎)를 지냈으나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유배된 이달선(李達善)이다. 모친은 안요경(安堯卿)의 딸이다. 처부는 신영명(愼榮命)이다.
1513년(중종 8) 식년시에 진사 3등 54위로 합격하였고, 1519년(중종 14) 식년시 문과에 을과 6위로 급제하였다.
1519년(중종 14) 조광조(趙光祖)를 비롯한 사림들이 중종반정에 공을 세운 훈구공신들의 작위와 상을 박탈해야한다는 위훈삭제(僞勳削除)사건을 일으켰을 때, 이공인(李公仁)은 예문관대교(藝文館待敎)의 직임에서 해임되었다가 복직되었다. 이후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으로서 조광조를 지속해서 옹호하였다. 1521년(중종 16)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로 있으면서 대간(臺諫)의 위상을 확립하고자 노력하였고, 1522년(중종 17) 홍문관박사(弘文館博士)에 제수되었다. 같은 해 세상을 떠났을 때 임금이 그의 죽음을 듣고 쌀‧콩‧장례도구를 하사하였다. 슬하에 아들로 이중호(李仲虎)가 있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집필자]
손용석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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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