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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걸(尹時傑)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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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계언(季彦)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남원(南原)
활동분야문신
윤은(尹訔)

[상세내용]

윤시걸(尹時傑)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계언(季彦)이다.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증조부는 윤임(尹臨)이고, 조부는 윤지득(尹之得)이다. 부친 중직대부(中直大夫) 금화사제검(禁火司提檢) 윤은(尹訔)과 모친 조원희(趙元禧)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은 윤시영(尹時英)이다. 부인은 남순종(南順宗)의 딸이다.

1507년(중종 2) 식년시에서 생원 2등 11위로 합격하였고, 1520년(중종 15) 별시에서 병과 4위로 급제하였다.

1525년(중종 20) 선릉(宣陵) 등의 왕실제사 때 전사관(典祀官)의 소임을 담당하였는데, 재소(齋所)에서 갑작스럽게 기절하여, 제사에 차질을 빚은 일이 있었다. 1526년(중종 21)에는 저작(著作)의 임무를 맡고 있었으나, 상중(喪中)에 있었다. 이후 임금은 명령을 내려 임양(任樑)을 박사(博士)로 임명하였는데, 대신(大臣)들은 윤시걸(尹時傑)이 순번에 따라 마땅히 박사가 되어야 하니 임양에 대한 하교를 물리고, 상(喪)을 끝낸 뒤에 윤시걸에게 박사를 제수하도록 건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간(司諫) 심사순(沈思順) 등으로부터 행실이 좋지 못하고, 심성이 바르지 못하다는 탄핵을 받았으며, 홍언필(洪彦弼)로부터 모친이 병고에 시달리고 있었음에도 기생과 연회를 즐기다가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탄핵을 받았다. 아들은 윤반(尹泮)이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司馬榜目
中宗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